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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Mar 24. 2022

E 가는 길

 요양병원에서 조리를 시작하고 10여 년이란 세월이 잠깐 사이 지나갔다.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지금 그 일에 빠져 손을 놓지 못하고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새로 시작한 근무지는 한창 코로나와 무더위 속에 개원을 하고 이제 곧 가을과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고 있는 신축 병원이다. 그곳까지 가려면 편도 일 차선 지방도로를 30여 분, 천천히 속도를 줄여 가면서 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이 자꾸 마음에 든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나 출근을 시작하는데 도로 특성상 새벽 공사 트럭이 상대 차선을 지날 경우가 많아 한동안 긴장해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 주위를 둘러볼 틈이 없었다. 조금씩 시간이 가면서 주변이 눈에 들어오자 퇴근길에 만난 잡목들과 나지막한 슬라브 시골집들, 그리고 아는 이들만 들릴 것 같은 어수룩한 밥집들과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정겹게 들어왔다. 


 그런 데다 개천을 끼고돌아서인지 안개가 자욱할 때가 자주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부터인지 두려움 대신 ‘무진기행’이나 헤르만 헷세의 ‘안갯속으로’를 연상시켜 좋다. 그에 보태어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니 온갖 생각들이 차분히 정리되어 안개등을 살살 뚫고 가는 길이 이만저만 즐겁지가 않다. 생각해 보면 겁 없는 운행임에는 분명한데 즐기는 나를 본다.


 그뿐 아니다. 출근길은 출근길 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들뜨게 하고 퇴근길에는 또 보이는 것이 나를 달뜨게 한다. 생각해 보면 긴장하고 조심해야 할 일 차선 도로를 즐기며 가고 있는 것이 겁보인 나에게 의외이기는 하다. 


 해가 질 무렵 만나는 울창한 숲에 쌓인 한정식집은 한번 내려 들려 보았으면 하는 곳이다. 더구나 푹 쌓인 숲 높은 곳에서 무질서하게 들리는 새소리는 ‘하얀 티티새’를 연주하는 피콜로 음률 같다. 처음에는 새소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괴한 소리가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러면서 조금씩 재미있어지면서,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데 이렇게 조화롭게 시끄럽지?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같은 곳을 지나는 동료가 새소리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새소리였다. 그것도 작은 새소리. 몇 마리나 될까? 잔잔히 미소 짓게 하는 곳이다. 가끔 비라도 내리면 그 많은 새들은 이 비를 어디서 피하고 있을는지 걱정만큼 궁금해진다. 


 한 번은 생각에 놓쳐 그만 우회전까지 놓쳐 버리고 말았다. 가로등도 없는 길을 한참 가다 보니 새로운 풍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시 돌아가라는 내비게이션 음성에 당황했지만 어차피 시골길인데 돌아가면 될 테지, 터널을 지나 언덕길을 넘어 다시 저수지를 돌아서 온 적이 있다. 두근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지각은 피했지만 도착은 늦었다. 


 예전에 살던 곳은 경기북부 쪽이었다. 막 신도시가 생성된 곳에 이주를 했는데 이곳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조금만 나서면 마치 소풍 온 듯한 풍경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버스를 타고 시내라도 나올라치면 관광버스를 타고 잠깐 떠나는 기분을 주기 충분했다.


 멀리 보이는 비닐하우스 무더기들이 마치 파도 물결 같은 착각을 주어 내가 서 있는 곳을 깜빡 잊게 했다. 조금만 나서면 개발에서 벗어난 시골길이 지친 나를 참으로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런 곳이 있다니. 길을 따라 마냥 가고 싶은 좁은 흙길이 이어지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키 작은 나무들과 언덕 위 하얀 예배당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런 데 다 그곳 또한 한강을 곁에 두고 있어 안개는 왜 그렇게 자주 짙게 꼈는지 외출 중 농무에 갇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창 개발 중이던 도시는 어수선하고 낯설어 우선 멈춰 꼼짝없이 걷히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것을 얼마나 가슴 두근대며 즐겼는지 또한 모른다.


 지금 이곳은 경기남부, 그곳과는 한참 먼 저 아래다. 그런데 반갑게도 아주 오래전 내가 살던 그곳처럼 이곳이 가슴 두근대게 한다. 물론 이곳도 30여 년 전 그곳만큼 개발에 늦춰진 곳은 아니어서 오래전 모습 또한 아니지만 도심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새롭게 산재해 있다. 사는 곳이 외곽인 이유도 있지만 아파트 정문만 나서면 논과 밭이 산과 개천을 끼고 가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러니 더 들어간 시골 일 차선 도로로 이어지는 출근길 지방 도로는 얼마나 사랑스럽겠는가. 거꾸로 생각이 많은 내 운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가족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출퇴근을 책임지겠다는 의향까지 비추지만 양보할 마음은 전혀 없다. 마당까지 보이는 시골집과 저만치 암자 가는 길까지 안내하는 이 길을 나는 좀 더 같이 하고 싶어 서이다.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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