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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Apr 27. 2022

눈물의 시대랍니다

 휴식 중인데 안면 익은 환우가 찾아왔다. 입이 깔깔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데 국수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어찌 쉬고 있을 수 있을까. 급히 조리대로 자리를 옮겨 잔치국수를 준비해서 올렸다. 그런데 국물만 비우고 그대로다. 진정 마음이 아팠다. 


 근무하고 있는 곳은 대다수가 암 환자가 요양 중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들의 입맛은 까다롭고 예민하기만 하다. 그러니 식사를 준비하는 영양실은 식단 조성에 고심이 깊어 윗분부터 조리에 관여하는 우리는 항상 긴장과 조바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하라는 동료의 전갈을 받고 기다리던 환우의 질문을 받았다. 퇴근 무렵이었는데 지나치게 불편하고 어려워서 관계되는 이들은 모두 피하고 싶어 하던 이였다. 사실 무거운 대면을 기다리는 기분보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앞섰다.


 때때로 메모를 준비해 와서 이건 어떤 과정으로 조리가 되었느냐, 여기에는 뭐가 들어갔느냐, 중요한 식재료는 어디서 생산된 것이냐, 항상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알고 싶어 했던 이다. 그는 먹는 것에 안심을 얻고 싶어서일 테지만 혹은 누군가의 관심과 진심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후자에 내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음식은 옛 어른들의 성찰 대로 ‘간’만 맞으면 맛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처럼 음식에 멋을 부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도 ‘간’이 먼저이니 소금이 우선이라고 설명해야 했다.


 천일염 자루 밑동에 칼집을 숭덩숭덩 내고 주머니를 열어 물 대여섯 바가지를 확 뿌려주면 뿌릴 때마다 거무스런 물이 빠지면서 점점 맑아지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서서히 간수를 오랫동안 빼고 나면 소금은 맑고 달달하다. 수정 같은 소금을 보면 된장도 담고 고추장이며 배추를 절여 김장도 해야 할 것처럼 아주 기분이 좋다. 


 조리법과 조미료 사용을 따지듯 다시 묻는다. 진한 육수와 과일, 채소 꽁다리들을 모아 채수를 만들어 매일 사용하고 있는데 얼마나 구수하고 맛있는지. 잔치국수, 된장국엔 최고다. 조림에도 찌개에도 최고이고 무침에도 볶음에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이런 설명은 당연히 그를 만족시키지는 않았다. 이미 그는 정해진 답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의 자문자답과 설명은 길어졌다. 


 생각해 보면 환우들은 그동안 얼마나 맛있는 음식들을 접했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식성을 바꾸어야 하니 까다로워지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치료 과정에 변한 입맛과 맛깔스러운 조미료에 길이 들여진 밖의 음식과는 차이가 나니 맛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정말 맛이 없을 수도 있다. 


 사실 이렇게 음식을 직업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요리는 잰 병이면서도 외식이나 매식이 거의 없을 만큼 식구들을 위한 식탁 준비를 즐기는 편이었고 장아찌며 밑반찬을 이웃과 나눠 먹기도 좋아했다. 그러던 중에 먹성 좋은 친구들을 자주 데리고 오는 아이들을 위해 요리학원을 수개월 수강을 하고 내친김에 무심히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직업으로 만나는 조리와 주변이 들을 위한 달콤한 요리는 참 달랐다. 조리와 요리의 괴리는 컸으나 레시피라는 용어도 없었던 당시의 필기 노트를 보며 맛을 내려 애썼다. 시행착오 덕분에 이제 익숙한 듯하지만 일로서의 조리는 여전히 묘연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들은 얼마나 많고 많은 영양 지식과 음식 레시피를 접하고 있을까. 그것을 따라갈 수는 없다. 잦은 실수와 부족한 부분도 있어 입에 맞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다독여 본다. 지금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있지 않냐고. 그러면서 그들이 정말 가까운 누군가처럼 느껴진다. 즐겨 드시던 나물을 조물조물 무칠 때면 울컥 그립기도 하고, 혹은 내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다 항상 그릇을 즐겁게 비우시는, 지금 병실에 계시는 그분 생각도 한다. 아이들이 엄마 밥을 싹싹 비우고 빈 그릇을 보여줄 때 그 마음이다.


 쑥쑥 클 것 같은 기분, 얼른 쾌차할 것 같은 기분. 까다로운 이는 까다로운 대로 그 마음이 되어 입에 맞지 않아도 많이 드셨으면 하는 바람이 얼른 나으실 것 같은 기분, 그래서다.


 이제는 ‘피’와 ‘땀’의 시대는 가버렸다고 한다. ‘눈물’의 시대란다. 공감과 감동이 시대라는 뜻일 것이다. 내가 그들이 되어 낮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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