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여름이 온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습도가 높아지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계절이다. 그리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 도착한다. 여름을 알리는 장마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우중충하고 눅눅하기까지 하니 아침에 눈을 뜨기 힘들어지고, 침대 밖으로 한 발짝 내딛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흐린 날씨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축 가라앉는다. 게다가 이런 날씨에 출근이라니. 눅눅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쏟아지는 빗속을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출근길 자동차 행렬. 우산을 써도 사방으로 쏟아 내리는 비에 젖은 신발과 옷. 밖에 나서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장마 우울증’이라는 증상이 있을 정도로 날씨와 감정은 깊게 맞닿아있다. ‘장마 우울증’은 일조량이 부족해지고 습도가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계절성 우울증의 하나이다. 경쟁과 성과를 부추기는 시대다. 스트레스에 노출이 쉬운 현대사회에 우울이라는 녀석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부쩍이나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데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울이라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기 쉽다. 어느 날 갑자기 우울감이 예상치 못하게 우리를 찾아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림책 『안녕, 울적아』(2019,모래알) 에서는 이런 첫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빌은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곧 비가 올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 빌의 머리 위에는 작은 먹구름이 떠 있다. 머리 위 작은 먹구름은 주인공의 우울감을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한 ‘울적이’라는 캐릭터다. 빌이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하필이면 되는 일이 없다. 좋아하는 양말을 찾을 수 없었고, 우유를 엎지르기도 한다. 빌의 머리 위 ‘울적이’는 점점 커지다가, 이목구비와 팔다리가 생기며 빌을 따라온다.
우울감이 밀려들 때, 감정의 늪에 쉽사리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우울감에 빠져서, 지금 드는 감정이 우울이라는 것도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알아채더라도 우울감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기 쉽다. 빌 또한 ‘울적이’를 못 본 척 무시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몸부림칠수록 ‘울적이’의 존재감은 더 또렷해진다. 녀석은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잠을 잘 때도 목욕할 때도 언제나 함께다. 점점 ‘울적이’의 덩치는 방을 꽉 채울 정도로 커진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우울감을 시각화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울적이’가 사라지지 않자, 빌은 울먹이며 외친다. ‘울적이, 네가 정말 싫어!’ 그러자 ‘울적이’도 눈물을 흘린다. 빌은 ‘울적이’의 눈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 보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울적이’를 안아주고, 손을 잡아준다. 둘은 함께 놀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친다. 덩치 큰 ‘울적이’도 점점 작아진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는 순간, 감정도 점차 작아진다.
우울감 하면 떠오르는 그림책이 또 하나가 있다. 조승혜 그림책 『다람쥐의 구름』(2020,북극곰)이다. 위 그림책은 ‘늘 비구름을 달고 다니는 다람쥐가 있었어.’라고 시작한다. 다람쥐의 우울감을 머리 위 비구름으로 표현했다. 항상 다람쥐를 따라다니는 비구름에 다른 친구들은 불편해하고, 다람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런 다람쥐에게 우산을 같이 쓰자고 다가오는 생쥐가 있다. 둘은 비를 놀이 삼아 함께 놀기도 한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 보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함께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로다. 다람쥐의 씩씩해진 마음처럼 다람쥐를 따라다니던 먹구름은 비 갠 뒤 무지개가 뜬다.
그림책 『안녕, 울적아』(2019,모래알)은 내 안의 우울감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는 이야기라면, 조승혜 그림책 『다람쥐의 구름』(2020,북극곰)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자기 긍정감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우울감은 어느 날 문득 장마처럼 우리를 찾아온다. 길고 긴 장마가 끝나고 나면 날씨는 청량해지고 여름은 더 푸르다. 우울감이 가고 난 뒤에는 또 다른 다채로운 감정이 온다. 7월, 곧 장마가 시작된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두 권의 든든한 그림책을 건넨다.
<팽샛별의 심심 心心한 그림책>은?
그림책 작가 팽샛별이 공감과 치유가 담긴 그림책을 소개하는 코너로, 이원수문학관 소식지 <꽃대궐>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다채로운 세상과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팽샛별
그림책작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여보세요?>(2017,위즈덤하우스), <어떡하지?>(2017,그림책공작소)가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기반으로 한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