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니 벌써 6월이다. 쳇바퀴처럼 흘러가는 일상에서 잊고 사는 것들이 참 많다. 올해는 6·25전쟁 74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이 분단국가임을 잊고,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잊고, 전쟁 이후 희생자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잊고,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폭탄이 터지고, 계속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잊고 살고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었다.
유월이면 위 세 권의 그림책이 생각난다. 세 권 모두 한국 작가들이 풀어낸 한국전쟁에 이야기이다. 전쟁이라는 소재는 같지만, 전쟁의 이면을 각기 다른 목소리로 풀어낸다. 이억배 그림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2010, 사계절)은 잃어버린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김정선 그림책 『숨바꼭질』(2018,사계절)은 전쟁을 겪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권윤덕 그림책 『꽃 할머니』(2010, 사계절)는 일본인 ‘위안부’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노래한다. 세 권 그림책 한국전쟁이 역사의 한 페이지임이 아닌, 일상 속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전쟁의 잔해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억배 그림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2010, 사계절)의 첫 문장은 이렇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들판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납니다.’ 사람이 오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는 평화롭다. 철조망 밖으로는 꽃이 피고, 동물들이 자유롭게 오간다. 비무장지대의 사계절이 흘러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묵묵히 전망대에 올라 북쪽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굳게 닫힌 철문으로 사람이 오갈 수 없는 모습과 자유로운 동물의 모습이 대비되어 분단 현실을 극명하게 전달한다.
김정선 그림책 『숨바꼭질』(2018,사계절)은 6·25 피난길을 놀이 숨바꼭질에 빗대어 어린아이 시선으로 서사를 풀어낸 점이 인상 깊다. 두 명의 술래가 등장한다. 한 어린이는 양조장 집 박순득이고, 한 어린이는 자전거포 집 이순득이다. 두 어린이는 전쟁 피난길에 나서며 헤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을 숨바꼭질로 묘사한다. 피난길은 고되다. 강을 건너기도 하고 폭탄이 터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길이 어린이의 시선에는 숨바꼭질 놀이 같다. 콩밭에 몰래 숨어 잠드는 밤, 달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눈물을 핑 돌게 만든다.
권윤덕 그림책 『꽃 할머니』(2010, 사계절)는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꽃할머니는 열세 살 무렵에 밭에서 나물을 캐다가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며칠 뒤, 방문 앞에 군인들이 줄을 섰다.’ 글과 함께 그림으로는 흩날리는 푸른 꽃잎 사이에 얼굴과 육체가 없는 제복들이 엉켜있다. 은유적인 그림 묘사가 마음을 더 서늘하게 만든다. 그런 고통스러운 시절을 거쳤음에도 꽃할머니는 지금 꽃누르미를 하며, 꽃 이야기할 때는 “사람들이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라며 활짝 웃으신다. 꽃이라는 상징은 그럼에도 평화를 이야기하며, 밝게 피어난 할머니의 삶과 닮아있다.
위 그림책들은 전쟁을 기억하고 마주 본다. 위 그림책들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도 전쟁으로 인한 상실감을 함께 공감하고, 과거를 마주하는 연결다리 역할을 한다. 믿기지 않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 전쟁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도사리고 있다. 전쟁은 집단 이기심으로 인한 비도덕적인 행동이며, 특히 여성, 어린이, 노인 등 약자에게 더 취약하다. 그러므로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한 또 다른 희생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하고 마주해야 한다. 기억한다는 건 중요한 것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의식을 가진다는 것, 연대한다는 것까지 연결된다. 위 그림책은 낮은 곳을 응시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작가로서의 소명감이란 이런 마음일까?
<팽샛별의 심심 心心한 그림책>은?
그림책 작가 팽샛별이 공감과 치유가 담긴 그림책을 소개하는 코너로, 이원수문학관 소식지 <꽃대궐>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다채로운 세상과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팽샛별
그림책작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여보세요?>(2017,위즈덤하우스), <어떡하지?>(2017,그림책공작소)가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기반으로 한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