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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Jan 21. 2023

술을 끊었다.

술을 끊었다.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간 술을 자주 마셔왔지만 중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을 끊고 나서는 어쩌면 중독 수준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기 먹을 때 소주 한잔 생각이 나고, 목이 타면 맥주생각이 간절하다. 날씨가 우중충하면 막걸리에 굴전이 생각난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 가볍게 위스키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조용한 식사자리에서는 와인 한잔을 곁들이고 싶어 진다. 물론 술을 끊기 전에는 주구장창 맥주와 소주만 마셔댔다. 그런데 막상 못 마시게 되니 별의별 술 생각이 다 난다.


술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정한, 공인된 ‘마약성 물질’이다. 또한 1급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술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그걸 신경 쓰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주변에는 애주가들이 득실득실하다.


술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알콜성 간질환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암의 원인이며, 고혈압, 부정맥 등 심혈관 계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치매환자의 대략 10%는 음주와 연관이 있으며, 정상적인 수면을 방해하고, 기억력 손상의 원인이며, 알코올 의존증은 우울증, 강박증, 정신분열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매년 술과 관련된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한국의 경우 대략 5천 명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약 2.4백만 명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의 인당 알코올 소비량(‘19년 기준 8.3리터/1명)이 OECD 평균(8.8리터/1명)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세상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러시아가 11리터 수준이고, 미국은 10리터 정도니 최근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술 소비량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수준이 못된다.


역사적으로 술 소비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물이 부족한 지역이나 환경에서는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술이 물을 대체할 수 있는 수분 섭취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봉기술이 발전하기 전 대항해시대 선원들은 물대신 럼주를 마셨고, 기생충 때문에 마시기 힘든 오아시스 주변의 부족들은 물대신 술을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또한 로마군도 식수로 포도주를 지급했다.


술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제조법도 다양하다. 곡식을 원료로 술을 만들 때는 전분을 분해하기 위해 직접 곡식을 씹은 후 뱉는 방법이 활용되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도 그런 방식으로 술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미성년 여인, 보통 무녀가 쌀을 씹어 뱉도록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기본은 당이 풍부한 과일을 직접 발효시키거나 곡식의 전분을 분해한 후 당을 만들어 발효시키는 것이다. 이후 증류 기술이 발전하면서 맥주를 증류한 위스키,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 코냑 등 도수 높은 다양한 술이 만들어졌다. 사실 발효만으로는 14도 이상의 술을 만들기 힘들다. 그래서 삼국지에서 장수들이 여러 동이의 술을 마시는 장면이 대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맥주 정도 도수의 술을 마신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술을 마시면 심리적인 장벽이 낮아져 평소에 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거나 멀쩡할 때는 힘든 표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세한탄도 하고 누군가에 대한 불만도 쉽게 얘기한다. 또한 술자리에서 깊은 대화를 나눈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진 느낌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취해 속에 있는 말을 다 하고 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다. 지독한 숙취는 덤이다.


그래도 술 마시고 싶다. 삼겹살에 맑은 소주 한 병이면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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