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번역대학원 졸업 이후
내가 약 3년간 다니던 사기업을 그만두고 통대를 진학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바로 취업.
다니던 회사에서의 업무로 이직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업계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직무, 다른 업종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내 상태 그대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는 거다.
다른 자격증을 준비하든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든지, 경영대학원이나 다른 전문대학원을 진학하든지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즉 자격증이나 석사 학위와 같은 뭔가 한 차원 다른 디딤돌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은 프리랜서 통역사, 국제회의 동시 통역사, 출판 번역사 등을 염두에 두고 통대에 진학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영어를 좋아하고, 영어가 내가 잘하는 것 중에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다른 해외파나 영어가 뛰어난 사람들에 비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국제회의 동시통역이나 프리랜서 통역사는 욕심나지도 않았다. 그냥 졸업하고 인하우스 통역사로 취업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통대 입시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입시 준비한다고 1년 2년 학원에서 머무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며 경력에 공백이 생기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20대였다면 학원에서 1-2년 정도 기본기를 닦고 준비하는 편이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때 이미 30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사실 뒤돌아 생각하면 30대 초반이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여성이 30대 중후반이 되면 취업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나는 KUMU과정에 입학했다. 심지어 마지막 학기는 호주에서 수학할 수 있어서 해외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나에게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호주에서의 하루하루는 너무 행복했다. 호주의 그 맑고 아름다운 날씨, 여유로운 분위기, 서로 지지해주고 배려해주는 동기들, 주말이면 가끔 호주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등에 동기들과 놀러 갔던 추억, 캠퍼스의 낭만, 내가 좋아하던 달링하버..
정말 내 인생에서 아름다웠던 추억 중 하나다. 30대라는 나이에 20대 학생들이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가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과 추억들을 늦게라도 쌓을 수 있었다.
호주에서의 한 학기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2월 말쯤인가 호주에 가서 6월쯤 학기가 끝났다.
사실 몇 년 전 일이라 그때 어떤 심정으로 취업을 준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서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나는 5월도 되기 전부터 잡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원서를 넣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5월에 호주에서 한 달은 재택근무로 일하고 6월에 한국 들어가면 출근해서 일하기로 했던 거겠지?
-취업 노하우는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