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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즐리 Aug 24. 2020

거절했어도 괜찮았어..

프리랜서의 심리학 

자유로웠던 약 1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출근하는 프리랜서가 된 지 3달째에 접어들었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만 출근하기로 했는데 프리랜서 형태의 고용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다. 

혹시나 모르는 흑우가 있을까 싶어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는 현재 4대 보험 없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내돈내산하고 있으며 3.3% 세금을 원천징수로 납부한다는 용역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사실 나도 통대 졸업하고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이러한 프리랜서 고용의 개념을 잘 몰랐던 적이 있어서 TMI로 이에 대해 적어보았다.

약 7여년 전,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서 나에게 4대 보험 가입을 하길 원하는지, 아니면 그냥 3.3%만 떼길 원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부끄럽게도 난 그 질문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4대 보험 혜택을 받는 계약직 직원 형태로 하겠다고 답했다. 

뭐, 출근해서 일할거면 계약직 고용형태가 프리랜서 용역계약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훨씬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프리랜서 용역 계약은 4대 보험 혜택을 못받는 단점 대신, 출퇴근을 안 하는 재택근무라던가,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라는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맺은 계약은 '4대 보험 없음'의 단점과 '9 to 6 출퇴근'이라는 직장인 근로자의 단점까지, 온갖 단점을 투 콤보로 갖추고 있다.


그래도 이 시국에 안정적으로 매달 월급이 들어온다는 장점 하나만 보고 열심히 출근 중이다. 매일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을 가장한 프리랜서이다보니, 가끔 예전 클라이언트들에게 외주 번역이나 통역 의뢰가 오면 반가우면서도 참 난감하다. 

번역은 퇴근 후에 하거나, 아니면 밤을 지새워서라도 일을 해서 납기하면 되지만, 통역은 무조건 연차를 내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한 달 일하면 하루 연차를 낼 수 있는데, 한 달에 2번 이상 연차를 내게 되면 매우 눈치가 보인다. 


8월 역시, 2번의 연차를 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원통한 점은 통역이 아닌 번역 외부 의뢰때문에 연차를 내고 갔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꽤 큰 분량의 번역을 의뢰해주시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운 좋게도 대기업 계열사와 연이 닿아서 직거래로 번역을 몇 번 맡아서 하고 있다. 

최근에도 연락이 왔는데, PM쪽 회사에서 급하다고 연락이 왔다며, 급한 번역인데 보안이 중요하니 그 회사에 직접 가서 번역을 해줄 수 있냐고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거절했어도 괜찮았는데, 나름 주요 클라이언트분이다 보니 막상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까운 연차를 내고 그 회사로 가서 번역을 했다는 이야기...


여기서 짚고 넘어갈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클라이언트가 말한 내용 중에 


1. 급하다

2. 보안 때문에 회사로 직접 와달라.


이런 경우, 대부분 생각보다 그렇게 급하지 않으며, 보안이라고 해도 상부의 승인을 받고 문서를 외부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그 동안 다년간의 경험으로 위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클라이언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 진짜 급한 것만 같고, 내가 지금 거절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이 넘어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급한데 내가 못한다고 하면, 다른 번역사를 찾아서 일을 맡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회사로 가보니, 급하다고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급한 사안도 아니었고, 보안이 철저하긴 했지만, 내가 회사로 못간다고 하면 상부의 허락을 받아서 나에게 메일로 문서를 보내줄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뭔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거절했어도 괜찮았다. 

내가 거절했어도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비록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완전한 프리랜서 생활로 돌아갈 것인데 단 한 명의 클라이언트도 놓칠 수 없다는 심리가 항상 내 마음 속 깊이 깔려있다. 그래서 충분히 거절해도 될만한 의뢰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프리랜서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언제쯤 빠르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거절해도 괜찮은 의뢰는 거절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거절해도 향후 그 클라이언트에게 계속 일을 의뢰받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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