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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4. 2023

삶은 자신만의 달을 향해 가는 과정

<달까지 가자>, 장류진

어제 슬쩍 들춰봤던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를 오늘 하루 단숨에 읽었다.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재밌게 읽었던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장류진 작가님의 글은 지금을 살아가는 2030 세대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을 정확하게 콕 찌른다. 찔려서 아프지만 유쾌한 문체에 웃게 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p. 97 나는 분명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전보다 세 개쯤의 나은 점과 한 개쯤의 별로인 점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플러스마이너스를 해보면 결국 두 개쯤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셈이었다. 비단 주거 공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 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 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 차츰차츰….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ㄴ 내 삶의 지난 궤적을 돌아보면 주인공이 살아왔던 속도와 비슷해서 짠하기도 했고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적어도 제자리걸음은 아니니까. 이사를 온 뒤로 그간 머물렀던 공간들을 자주 떠올렸다. 첫 독립공간이었던 원룸에서 투룸, 지금의 집까지 오게 되면서 공간의 이동이 있을 때마다 거주하며 느꼈던 불편한 점을 개선하는 조건이 충족되는 나에게 맞는 공간에 가까운 방향에 가까워져 갔다. 박음질의 속도로 천천히.


p.187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불편했는데,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새로 지어진 7성 호텔의 모든 게 마음에 들수록, 만족감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쪽 마음도 동시에 늘어났다. 그러니까 땅 밖의 줄기가 길어질수록 땅속의 뿌리도 그만큼 깊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한번 7성에 묵고 나면 이제 1성이나 2성은 못 갈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약간 부자가 된 은상 언니를 따라왔을 뿐, 아직 7성에 올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 난 이 쾌적함과 고급스러움이 이미 마음에 들어버렸다. 대체, 어떡하지?

ㄴ 20년 넘게 거주한 본가는 오전에 짧게 해가 드는 북동향이었고 독립한 후의 공간은 대로변이라 창문을 열어 둘 수 없거나 앞 뒤가 건물로 꽉 막힌 통창이 없는 구조였다. 아침부터 종일 해가 드는 집에 살아 보는 게 처음이라 낯설고 신기했다. 층수,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가 달라진다는 자명한 이치를 경험을 통해 몸에 새긴다. 그러면서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뿌리가 깊어짐에 따라 이전과 동일한 환경에서 만족감의 크기가 같을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 같아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온전히 누리는 게 맞는 걸까 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p.188 인피니티는 무한하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결코 가닿을 수 없다고 여겼던 아득히 먼 세계. 그런 곳에 운 좋게 발을 살짝 담갔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욕심에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하고 나면 이제는 저걸 하고 싶고, 저걸 하면 그다음 걸 하고 싶어졌다. 한계가 없는 내 욕망이, 그 마음들이 왜인지 창피했다. 속이 복닥거렸다.

ㄴ 나의 두려운 감정은 욕망했던 것을 손에 쥐자 잃고 싶지 않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욕망의 그릇에 넘치지 않을 만큼 채웠다 생각했는데 또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아이러니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비워지지 않음을 욕망하는 것 또한 나의 모습인 것을. 책을 완독하고 나서 내가 추구하는 ‘건강한 욕망’의 방향은 어떤 것일지 물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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