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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9. 2024

나의 작은 빛이 당신에게 가 닿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24년 새해 첫 소설책으로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집어 들었다. <쇼코의 미소>에 이어 <밝은 밤>까지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섬세한 문체로 빚어내는 것에 매료되어 감탄하며 읽었다. 23년 호평 일색이던 책이라 아껴두었는데 1월 리추얼 [인문학X감정일기]을 하며 천천히 느리게 곱씹어 읽기에 제격이다. 매일밤 11시 최소한의 간접등만 남겨둔 소등 후 읽고 쓰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ME TIME 모드로 전환한다. 


[단편 - <아주 사소한 빛으로도>]

p.11 그녀가 고른 에세이들도 좋았고,  혼자 읽을 때는 별 뜻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을 그녀가 그녀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머릿속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도 좋았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ㄴ 어떤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는 적확한 언어를 떠올릴 때 느끼는 쾌감이 있다. 무형의 느낌, 형태를 언어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성취감이거나 나의 언어로 내재화했다는 뿌듯함이다. 자신의 생각을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고 글로 써 내려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형의 형태가 무엇이든 우리는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며 생애 동안 그 과정선상에 서있다면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p.31 그가 잔인함을 잔인함이라고 말하고, 저항을 저항이라고 소리 내어 말할 때 내 마음도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덜 외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그러지 않았던 내 비겁함을 동시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략)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특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ㄴ 어떤 사안에 대해 나의 의견을 침묵하는 편이 좋을지, 드러내는 게 맞을지 고민하게 되는 때가 점차 늘어난다. 세상은 하나의 사안에 대해 수많은 견해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잦은 침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상충하는 의견으로부터의 잡음에 대한 회피이며 나의 용기 없음을 숨기는 비겁한 행동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의견이 ‘불필요’ 하지 않게 되기 위해선 서로가 현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편향되지 않으나 설득력이 있는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면 좋겠다.


p.33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ㄴ 더 이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 이를 잊지 않는 것은 오랫동안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기억할 수 없는 이는 자신의 영혼에서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기억에서 잊힌다는 건 타인에게나 자신에게나 슬프고 가엾다. 


p.44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ㄴ 지금의 나는 어떤 빛을 따라가고 있는 걸까. 20대에 나는 동경하던 이가 있었고 그 빛을 좇았으나 가까이에서 본 그의 발자국 방식은 나의 방식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길잡이가 되어줄 빛이 없는 길은 공허하고 막막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방식을 향해 가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 주고 있는 걸까. 


[단편 - <몫>]


p.51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일에 가까웠다.

ㄴ 어떤 식으로든 변한 당신에게서 예전의 당신을 발견할 때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온다. 마지막 만남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후라도 상대에게 '너 참 그대로다.'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고 싶고, 나 또한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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