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p.27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걸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익힌 도덕적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순간 자신이 남긴 흔적을 지우고 싶던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이었을까. 독자로서 나는 어림짐작 할 뿐이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이 사회에는 착한 시민으로, 그녀 자신에게는 친절하지 못한 방식으로 남았다. 스스로를 채우지 못한 채 쓰레기 통으로 향해 간 친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p.35 침묵은 때때로 상대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를 줄이거나 보탬 없이 그대로 전하는 힘이 있다.
ㄴ 오래 가깝게 알고 지낸 친구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는 일이 많아졌다. 서로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과 방향이 달라지고 자아가 다듬어지면서 구태여 설득을 통해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침묵도 또 다른 언어의 방식이다. 당신의 말에 나의 무게를 줄이거나 싣지 않겠다는 표현의 방식. 그렇기 때문에 침묵의 언어를 이해하는 상대와의 대화는 나의 속도대로 생각을 발화할 수 있고, 상대의 속도를 기다려주며 서로가 존중받는 소통이 가능해진다. 나는 과연 상대의 침묵의 언어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