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라테
20대 시절 우리 동네에서 술 잘 사주는 성당오빠.
그건 바로 현 내 남편이다.
21세기가 도래한 2000년대에도 어느 집 찬장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뻔히 다 알 수 있는 작은 동네에 작은 성당에서 초중고 시절부터 쭉 함께 성당을 다니며, 함께 커온 언니오빠 동생하던 사이들은 20대 청년들이 되면서부터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리고 너나 할거 없이 모두 다 교사회, 청년회로 다시 이어졌다. 물론 그 모임들은 성당밖 호프집에서 만남으로 다시 이어졌고, 그 속에 유난히 빠지지 않고 늘 모임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술 잘 사주는 한 사람이 전 성당오빠, 현 남편이었다.
늘 매주 금요일 저녁 집에 들어가는 길이면 어김없이 동네 어디 술집에서 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디 호프 집에서 하고 있으니 오라 하는 문자였다.
전 성당오빠는 늘 활동적이고 대외적인 사람이었다. 늘 모임을 주도하고, 사람을 모으고, 주말 술모임을 위한 빌드업을 위해서 사람들 모아서 운동을 빠짐없이 하곤 했고, 오늘은 왜 안 나타나지 하는 날에는 번개처럼 쏜살같이 어디선가 달려 나온다. 술자리에선 늘 목소리가 제일 컸고, 신나게 놀고 마신만큼 대학생 동생들을 위해서 술값도 척척 계산할 줄 아는 물질적 교환가치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술자리에서만큼은 확실한 계획이 있었다.
모두가 서로서로 속속들이 너무 오랜 세월 알고 지내는 이 모임 사이에서 하는 비밀연애를 하던 시절에는 나도 모르게 그게 참 멋져 보였다. 그는 마치 백마 탄 왕자님과 같이 늘 모임 자리에서 빛나는 한 사람이었다. 그 한 사람과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다 3차가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나면 집 방향이 비슷하니 같이 걸어가자며 동네를 거닐던 시절이었다. 그땐 내가 이 세상 멜로드라마 주인공 같았다.
하지만 결혼 후엔 이야기가 달랐다.
모임의 중심에 서 있던 그 한 남자는 결혼 후 아직도 모임의 중심에 서 있다.
결혼 전 맺고 있었던 인간관계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쳐 거의 남지 않은 나와는 달리 이 남자는 아직도 대학교 친구, 대학원친구, 첫 회사 동기, 같이 일하는 사람, 일을 도와주는 거래처 사람, 심지어는 아이 친구 아빠들 까지도 (이건 내가 소개해준 인간관계인데, 나보다 더 잘 만난다는 게 문제이다.) 끊이지 않는 모임의 중심에 있는 이 남자. 조세호랑 결혼하면 이런 기분일까? 어디든 빠지지 않는 프로 불참러. 공사다망하신 이 분, 술자리에선 전화가 안된다. 자기가 필요할 때 아니면 보지 않는 핸드폰은 대리를 부를 때가 되어서야 쳐다보고는 콜백이 오곤 한다.
애초에 신혼 때부터 술 마시러 나간 사람 언제 올 거냐 전화해서 집에 들어오게 하리라 하는 건 포기했다. 대신 두 가지의 조건을 내밀었다.
1. 절대 외박은 안된다.
2.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싸인, 지장.
하지만 그가 다시 돌아왔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회식이 잦아들고, 모임이 사라지고, 밤외출이 사라지니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술 잘 사주는 성당오빠가 되어서 말이다. 그는 마치 코로나 기간에도 상관없다는 듯 마누라와 함께 노는 게 제일 재밌다는 소리를 시시하게 해 댔다. 참, 너는 술 마실 계획이 참 많구나.
그래도 어찌 미워하겠나 밖에서 안 마시고 나랑 놀아준다는데.
이제 어쩌다 보니 술친구의 전부가 남편이 되어버렸다. 술친구인 남편은 이제 의리이고 애정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오늘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