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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수의 결혼식

제 3장. 여자의 세계

by 파고

제 3장. 여자의 세계


“대박, 진짜 예뻐요, 과장님-.”

“완전 날씬해 보여요! 확실히 강남 쪽이라, 뭔가 다르네-.”

또 얼굴이 벌겋게 올라온다. 저 말들이, 그걸 듣는 내 귀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진다. 참아야 해, 티 내지 말고 웃어야 한다.

“날씬하긴요-. 입어보는데 진짜 민망하더라고요.”

태연하게 잘 대답했다. 사회생활이 이런 거지.

“왜요? 예쁜 드레스 실컷 입어보고 얼마나 좋아요-. 난 나중에 한 삼십 벌 입어봐야지.”

아니, 절대 그러지 마라.

“남자친구분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뭐래요? 완전 넋을 잃었죠?”

이 대목에서, 결국 못 참고 웃음이 터졌다. 난 왜 이럴까. 이러니 직장에 친한 사람이 없지. 얼른 자연스럽게 대답으로 이어가며 오늘도 사회적 위기를 넘긴다.

“자기가 더 긴장해서 땀을 줄줄 흘리더라고요. 너무 웃겼어요-.”


오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 얼굴들. 정말 대견하다. 별 관심도 없는 얘기를 저렇게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할 수 있다니. 정말 자식들 참 잘 키우셨다, 저 집 부모님들은. 서른 후반으로 보이는 서른 중반의 과장이 마흔 후반으로 보이는 마흔 초반의 남자와 결혼 준비를 하는 일에, 대체 쟤들이 무슨 관심이 있겠느냐 말이다.

아, 어쩌면.. 혹시 장차 본인들의 모습을, 내 드레스 사진에서 비춰보는 걸까. 그렇구나, 갑자기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상상, 시뮬레이션인 거다. 그 안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본인의 모습,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남자, 그는 또 얼마나 매력이 흘러넘칠까. 그 매력남의 상대로서, 눈을 게슴츠레 뜨거나 잇몸을 보이며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거였구나. 이해가 되고 나니, 비로소 나도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상상 좋지. 공짜니까 마음껏 해.


“집은 어떻게 하기로 하셨어요?

.. 왜 안 물어보나 했다. 이제부터가 진짜구나.

“그냥 소박하게 시작하기로 했어요, 서로. 요 근방에 전세 구하려고요.”

“이 근처 전세 보증금 되게 비싸던데, 남편 되실 분 능력 있으신가보다, 그쵸?”

아니요.

“아, 그냥 뭐... 직장 연차가 있으니까-. 그 정도는 부담 없이 되나 봐요.”

제정신인가,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와, 좋으시겠다-. 반지도 기대돼요, 나중에 꼭 보여주세요~.”

“역시 과장님, 능력 있는 분이랑 하시는구나-. 진짜 부러워요~.”


어질어질하다. 동영상 편집기에 집어넣고 중간부 자르기를 실행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니, 중간부만 잘라서 되겠나, 그냥 결혼하기로 한 그 장면부터 잘라버려야 하나.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때의 난. 그리고 지금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항상 본질을 잃어버린다. 세상 모든 일에서, 나를 포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러고들 사는 것 같다. 엄마 뱃속에 생명으로 자리 잡아 태어나고, 젖을 빨고, 말을 하고, 서고, 걷고, 뛰고, 딱 거기까지, 생존에 직결되는 확실한 목표가 있을 때까지만 사람은 본질을 잃지 않고 산다.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그 미션들을 수행할 때까지, 그때까지만 스스로 원하는 것과 성취해야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오롯이 그것에 집중하고 매진한다. 하지만 그 이후 사회에 발을 들이고 그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가면서부터는 자신에게 이런저런 선택지가 있다는 기이한 착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 진짜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학창시절에는 어른들이 하라니까 공부하고, 다른 애들이 다 하니까 공부하고, 좋은 대학이라는 곳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그냥 안 하기는 뭣하니까 공부한다. 이 중 공부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렇게 공부한 우리가 그 공부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학교 졸업하면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직장을 고르고, 남들한테 뒤지지 않는 연봉을 받으려 세월을 바치고, 끝없이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염탐하면서 내 직장이 어떻게 보일까를 비교 계산하여 동기 모임에 나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이 중 직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렇게 직업을 가진 우리가 그 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런 관문들을 통과하며 이미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린 우리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관문, 결혼 앞에서 그 정점을 찍고야 만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 듯, 감정과 사실, 기대와 실망과 타협의 경계를 오가며 우리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이상한 결정들을 내린다. 현실적으로 이쪽이 낫지만 감정적으로 저쪽이 끌려 그걸 선택하거나, 감정적으로 이쪽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자신을 스스로 어르고 달래 어떻게든 저쪽 타협으로 질질 끌고 간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건 슬프게도 우리, 나 자신이다.


결혼의 조건이라는 말, 우리는 늘 남일처럼 이야기한다. 상대방의 집안, 직장, 외모, 나이 등 남들 보기에 번듯하고 내 생활을 고루 윤택하게 해줄 요소들을 뜻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결혼이라는 나와 타인 간의 무모한 묶음 구성에 따른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마치 대입 수학능력시험처럼, 비록 그 성적에 따른 인생의 성공 여부는 정비례도 아니고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시험 결과가 성공의 본질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것조차 망쳐버리면 더욱 희망이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인생 전체가 그 결과에 달린 듯 성장기를 통째로 갖다 바치고 실패하면 죽는다고 악을 써야 한다. 사회에서 성공할 희망, 지금보다 낫게 살 희망. 그걸 잘 본다고 인생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못 봐서 인생이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건 더 싫기 때문이다. 결혼의 조건이란 것도 그렇다. 그 조건이 좋다고 해서 내가 여자로서 이 사회에 더 굳건히 발붙이고 행복을 보장받는 건 아니지만, 그게 비록 결혼과 행복의 본질이 아닐지언정 내 선택이 잘못되어 인생이 틀어진거라고, 처음 시작부터 이미 불리했었다고 여겨지는 건 더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지말아야 할 것은,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는 사실. 나만 조건을 따지겠는가? 내가 아는 건 남들도 다 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에둘러 염려하던 자신의 조건, 자신의 수준이라는 것이 구석구석 원치 않는 곳까지 파헤쳐지며 아주 그냥 난도질을 당한다. 상대에 의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


그런 부작용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취집한다, 그런 표현들을 극도로 혐오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떠들지만 실은 나 자신이 같은 방식으로 평가받는 게 겁이 나고, 지금 내 앞의 저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리고 속되게 들린다며 고상한 척하고 있지만 까놓고 말하자면 나도 다를 바 없다. 결혼하면 혼자 사는 것보다 전반적인 상황이 나아질거라 근거없이 기대하고, 어떤 부분이든 남들만큼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내심 기준을 세운다. 그러면서도 내 조건, 내 수준을 교묘하게 계산해가며 딱 내가 비굴해지지 않을 선에서 재고, 따지고, 사람을 고른다. 아니, 그 사람과 나의 조건을 견주어 맞춘다. 내가 만약 초절정 미녀였다면, 재벌 집 외손녀쯤 되었다면 지금의 남친과 결혼을 생각했을까? 뭐, 대답할 필요도 없겠지. 그럼으로써 결국 상대방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수준을 내가 잣대질하면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갉아 먹고 알아서 찌그러진다.


지금 저들의 질문들이 세속적이고 냄새난다고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꿀리기 싫어 어물쩍 말을 보태는 내가 더 세속적이다. 내심 남친에게 받게 될 결혼반지의 알 크기가 얼만 할지 궁금해지는, 또 그걸 보게 될 남들의 눈이 미리 앞서 염려되는 내가 더 냄새가 난다. 너무나 지독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이런 혼탁한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결혼의 본질이라는 걸 어떻게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결혼한 우리가, 그 결혼으로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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