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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May 01. 2024

Ⅰ부-1. 저널테라피가 뭔데? 4)

4) 나에게 저널테라피란?

<저널테라피가 뭔데?>라는 질문에 대한 네 번째 글이다. 나에게 저널테라피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저널테라피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답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저널테라피란 '평안으로 가는 길'이다. 


2009년 9월 20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제 1회 국제 저널치료 워크숍에 참석했다. 이 워크숍의 주제가 ‘혼돈에서 평안으로(From Chaos to Calm)’이었다. 미국 저널치료센터 소장인 애덤스는 저널이란 ‘나’를 생각하고 ‘나’를 쓰는 것라고 정의하며 워크숍을 시작했다. 애덤스의 저서, <저널치료>와 <저널치료의 실제>를 번역한 이봉희 교수가 이날 통역을 했다. 


워크숍은 기법을 활용하는 실습 중심으로 4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총 6개 기법의 저널을 실습했다. 쓰는 데만 걸린 시간은 총 30~40분 정도였다. 한 저널당 10분이 안 걸린 셈이다. 문장완성하기를 통한 자기 이미지 글쓰기, 5분 집중 글쓰기, 불편한 것 세 가지 중 하나에 집중하여 쓰고 나누기, 인물묘사 기법으로 스트레스 관련 느낌을 의인화하여 묘사하기, 대화기법으로 스트레스 요인과 대화하기. 대처 방안 목록 쓰기 등을 실습했다. 그 중 한 가지, 스트레스 요인을 찾아 대화 기법을 활용한 저널 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이날 워크숍 주제처럼 온통 혼돈 속에 있었다.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던 터라 지쳐 있었다. 학교일, 집안일, 공부 등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일만 벌여 놓고 허덕였다. 자존감도 낮아진 상태였다.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불편한 일의 목록을 적는데 다섯 가지가 순식간에 써졌다. 그 중 하나가 ‘고3 아이들을 위한 진로상담 프로그램 만들기’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고3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한 사명감 자체가 바로 스트레스원이었다. 그 무거운 사명감을 ‘모기’라 이름 붙이고 대화를 시작했다. 


모기는 작은 곤충이지만 귓가에서 왱왱거리면 그 소리가 감당할 수 없이 커서 귀찮고 신경 쓰이는 존재이다. 특히 편하게 쉬고 싶은 잠자리에서 큰 고통을 준다. 내가 만나는 고3 아이들, 진로와 입시로 힘들어 하는 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나를 쉴 수 없게 했다. 잠들려는 나를 깨워 허공이라도 휘젓게 만들었다. 감히 대한민국의 고3 아이들에게 진로상담 프로그램을 해보겠다고 뜨겁게 날뛰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면서, 도대체 그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기에 "아휴~ 몰라. 몰라. 나도 몰라."하면서 그냥 눈 감아 버리려고 하면, "그래도 네가 이 일을 해주면 좋겠어."하는 음성이 귓가에 맴도는 모기처럼 의식의 잠을 깨웠다. 이 모기와 대화하기 저널을 썼다.       

   

나: 너는 어쩌자고 나한테 달라붙어 이렇게 힘들게 하니? 시끄럽게 윙윙대고 내 피를 쪽쪽 빨아먹고. 

모기: 내가 힘들게 한다고? 웃기시네. 니가 날 불렀잖아. 니가 하고 싶다면서? 그니까 투덜대지 마. 

나: 투덜대지 말라고? 참 쉽게 말한다. 이젠 적당히 할 때도 되지 않았니? 그동안 정말 바쁘고 힘들게 살아왔어.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왜 나만 고3 아이들 걱정을 하고 있냐고? 웬 쓸데없는 오지랖이냐고? 

모기: 크크! 정말 어이없다. 누가 시켰냐고? 니가 간절히 원하는 거잖아!

나: 맞아, 니 말이 맞구나. 내가 원했지. 니 탓이 아니야. 그런데 나 어떻게 하면 좋아?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어. 좀 도와줘. 

모기: 너 힘든 거 알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박사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 거기에다 고3 아이들 프로그램을 만드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으니 힘들지. 하지만 넌 날 버리지 못 하잖아. 나를 버리는 게 더 스트레스일걸? 

나: 맞아. 나는 너 못 버려. 사실은 너를 버릴까봐 두려워. 

모기: 바보! 나는 너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곤충이야. 니가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고! 이제 니 귀에 대고 윙윙거리지 않고 기다릴게. 

나: 알았어. 사명감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을게. 하는 데까지 해볼게.

모기: 어렸을 때처럼 모기장이라도 치고 편히 자. 그럼 나도 모기장 밖에 있을게. 너를 믿고 기다릴게.

나: 고마워.      


이 저널을 쓰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남아있었지만 도망치지 않을 용기를 얻었다. 위크숍 주제처럼 이 날의 저널테라피는 내게 평안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애덤스의 저널기법을 활용하여 수능을 앞둔 고3 아이들과 함께할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널테라피를 통해 평안으로 가는 이 길에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과 15년째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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