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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Apr 28. 2024

Ⅰ부-1. 저널테라피가 뭔데? 1)

1) 연우의 저널테라피

※ 브런치스토리에 소개되는 저널들은 공개 동의를 받았으며, 등장하는 청소년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부에서는 <청소년과 함께한 저널테라피>와 관련된 질문 다섯 개를 다루려고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저널테라피가 뭔데?>이다. 청소년과 함께한 저널테라피가 뭔지 설명하기 전, 연우의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10여 년 전 고2 담임을 하면서 만난 연우는 영어를 잘했고 외교관을 꿈꾸었다. 학교의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가끔 울적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얼마 안 있어 회복하는 것 같았다. 이런 연우가 진로 관련 행사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공개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썼다고 했다. 다음은 연우가 쓴 글의 일부이다.       


나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계속되는 상담에도 큰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 나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상담에 진심으로 임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과 생각들을 보여주는 것이 어렵고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나만의 방식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과 그때마다 내가 한 생각, 기분 등을 모두 자세히 적어갔다. 노트 한 권 정도의 분량인 그 이야기들을 의사 선생님께 전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의사는 내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고, 본격적인 약물치료가 시작되었다. 우울증 약을 먹은 후 몇 시간 동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쉽게 졸리고 나른해지며 종종 어지러운 증상이 있었다. 우울증 약의 흔한 부작용이다. 


어느 날 문득 지금 복용하고 있는 이 약이 과연 이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병이었다. 그 원인과 증상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 것이 확실한데도 제 3자인 의사의 처방전에 의지하여 치료를 기대하는 내가 불쌍하고 한심했다. 내가 겪고 있던 병의 원인은 과거로부터의 안 좋은 기억들이었다.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파노라마 같은 기억들을 스스로 자꾸만 떠올려서 괴로워하는 것이 우울증을 겪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이미 지난 일인 과거를 자꾸 들춰서 현재의 나를, 또 미래의 나까지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을 굳이 약을 먹어가며, 그 부작용까지 겪어가며 고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 후로 지난날의 안 좋은 기억들을 곱씹으며 슬퍼하기보다는 발전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모든 일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또한 약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을 눈앞에 두고 더 이상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사실 우울증 약을 끊기로 결정한 것도 의사와 의논하지 않고 혼자서 결정한 것이기에, 복용을 중단하고 나서 바로 예전처럼 밝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났다. 그때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적었다. 일기처럼 쓰기도 하고, 메모장에 마구 휘갈겨 쓸 때도 있었다. 그러면 한결 마음도 편안해지고, 이겨내야겠다는 의지도 커졌다. 


유치원 적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의 도움도 컸다. 초등학교 진학 후 우리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자주 볼 수 없게 되어서 그 친구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학교에서 매일 마주치는 친구들에게는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속사정을 편지를 통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다소 아날로그적인 편지 쓰기는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과 설렘이 되기도 했다. 편지를 통해 친구는 늘 내게 위로와 응원을 해주었고, 나는 내 곁에 항상 있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학급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한 저널 쓰기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성적에 관한 일 등을 일기처럼 썼는데 선생님은 이걸 저널이라고 하셨다. 이 저널들을 통해 처음으로 선생님께 내 문제를 고백할 수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습방법과 생활태도 관리 등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때때로 찾아오는 심리적 동요를 다루는 것에 관해서도 저널을 씀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제출하면 선생님이 저널을 통해 상담 피드백을 해주셨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상담자가 되어 주셨다. 학교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된 좋은 기회였다.


지금 나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데에 있어서도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의 감정조절 또한 잘 해내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스스로의 벽을 깨고 나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과 과정이 걸린 일이었다. 글쓰기가 결국 나를 구했다.     


글쓰기가 연우를 돌보아 주었다. 정신과 의사에게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연우는 글로 쏟아냈다. 연우의 글이 치료사의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친구의 글과 담임교사의 글과도 공명할 수 있었다. 저널테라피 책을 저술한 애덤스Adams는 자신의 저널을 ‘이천 원짜리 치료사’라고 불렀다. 단돈 이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스프링노트에 적은 저널이 얼마나 강력한 치료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직접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였다. 연우는 스스로 경험한 저널테라피를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연우의 이야기를 통해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를 부정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바란다. 이 사례가 모든 우울증 치료에 적용될 수 없다. 다만 연우는 글쓰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글쓰기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우울증을 이겨내 보고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쓰는 글쓰기이다. 둘째는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 쓰기이다. 셋째는 고2 때 담임교사(현재 필자임)의 피드백과 함께한 저널 쓰기이다. 연우는 이 세 가지 글쓰기 과정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털어놓았다.


연우가 쓴 글은 모두 자신을 성찰하고 표현한 글이다. 바로 '저널'이다. 여러분이 쓰는 많은 개인적인 글들이 바로 저널journal이다. 낙서, 일기, 편지 등이 저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저널테라피는 연우처럼 우울한 경우는 물론이요, 모든 삶의 자리에서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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