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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May 16. 2024

Ⅰ부-3. 저널테라피로 청소년과 무엇을 하는데? 1)

1) 자퇴하고 싶다고요!

 저널테라피로 청소년과 함께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준호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종종 학교를 그만두려는 아이들을 만난다. 준호는 2008년에 만난 아이이다. 고1 남학생 준호는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10시가 넘어서야 등교하곤 했다.  입학하고 며칠 안 지나고부터 거의 3개월 동안 지각과 조퇴를 반복하다가 급기야 자퇴를 선언했다. 준호는 자퇴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부모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했다. 담임교사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준호를 만났다. 준호를 만난 그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08년  6월 초 5교시 시작종이 울리자 담임교사가 아무 연락도 없이 준호를 데리고 왔다. 두어 걸음 뒤에 쭈빗거리며 서있는 준호는 억지로 끌려온 듯 보였다. 오죽 하면 수업 중 교실에 있어야 할 아이를 데려왔을까 싶었다. 말을 안 하니 도무지 그 속을 모르겠다며 한탄하는 담임이 나가자, 준호는 3인용 소파 끝에 주저앉았다. 철퍼덕! 삶의 무게를 온몸에 담아 내동댕이치는 것 같았다.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준호 손에 쥐어주며 천천히 마시라고 했다. 아무 말 안 해도 괜찮으니까 차 마시면서 쉬라고 했다. 급하게 보고해야 하는 공문을 처리하느라 10분 정도가 흘렀다. 준호는 차를 다 마시고 빈 종이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준호 옆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많이 힘들지?”

  “......”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어차피 5교시는 여기에 왔으니 그냥 편하게 있어도 괜찮아.”

  잠시 앉았다가 일어서려는데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저어~ 도와주세요.”

  “응? 그래? 그럼, 우리 진로상담 해볼까?”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준호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무슨 진로상담?’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상담을 진로상담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상담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지금은 상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많이 해소되었지만, 예전에는 상담을 문제 있는 아이들에게 가하는 벌칙처럼 여겼다. 하지만 상담에 진로를 붙여서 진로상담을 한다고 하면, 모든 아이들이 당연히 해야하는 상담으로 여겨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둘째, 아이들의 강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정서적 문제, 부적응 행동, 대인관계 갈등, 복잡한 가정 환경 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상담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아이의 저항이 크기도 하고, 아이와 신뢰를 쌓기 전에 에너지가 소진되기도 한다.

셋째, 상담의 효과가 높다. 진로상담의 목적은 아이의 미래와 꿈에 있다. 이 목적에 가까워지다 보면 현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학교에서 상담 시간조차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짧은 시간에 상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모든 상담이 그렇듯이 진로상담도 내담자의 말을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할 수 있으면 도와야 한다. 진로상담을 하자는 말에 준호는 자퇴할 거라는 말을 바로 끄집어 냈다.

       

필자: 우리 진로상담 해볼까?

준호: 저 자퇴할 건데요?

필자: 알아. 네가 학교를 그만 두는 것도 네가 선택한 진로잖아. 

준호: 아! 예~

필자: 무엇을 도와줄까?

준호: 자퇴요.

필자: 네가 자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거구나.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준호: 쉽지 않아요, 벌써 한 달째... 

필자: 그랬구나. 힘들겠다. 

준호: 지긋지긋해요. 말이 안 먹혀요. 

필자: 누구에게 가장 말이 안 먹히니?

준호: 엄마요.

필자: 그럼, 엄마에게 말이 먹히게 전략을 세워 보자. 게임 하나 할 때에도 전략을 세우는데 이 엄청난 진로를 결정하면서 당연히 전략이 필요하지. 선생님이랑 같이 해보자.     


빈 종이에 ‘준호의 자퇴 성공 전략’이라고 제목을 적었다. 우리는 같은 편이니 서로를 신뢰하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야 효율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했다. 준호도 고개를 끄덕였고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필자: 왜 자퇴하고 싶어?

준호: 친구도 없고 학교생활이 좃나 재미없어요. 늦게 오다보니 점점 학교 오기 싫어요.  

필자: 친구가 없으니 학교 올 맛이 안 나지.  

준호: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서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학교 다니고 싶었어요. 엄마가 이 학교에 억지로 보낸 거예요. 전통 있는 학교라고.

필자: 어머니께서 전통 있는 학교로 일부러 보내신 거 보니,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신가 보구나.

준호: 그게 문제예요. 이렇게 엉망으로 살아도 포기를 못해요.

필자: 네가 어머니한테 엄청 소중한 사람인가 보다.

준호: ......

필자: 엄마가 반대하시는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준호: 형이요. 

필자: 형?

준호: 형도 고1 때 검정고시 본다고 자퇴하고서는 빈둥거리고 게임만 해요. 저도 형처럼 될까봐 그래요. 저를 믿지 못하는 거죠.

필자: 형은 형이고 너는 넌데... 왜 못 믿으실까?  

준호: 날마다 학교에 지각하고 중간에 나와 버리고... 주말에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노느라고 외박을 자주 해서...

필자: 그렇구나. 이제 우리가 전략을 잘 짜보자. 일단 어머니가 너를 믿게 하면 되겠네. 넌 어떻게 생각해?

준호: 예, 맞아요!    

 

준호의 자퇴 성공 전략 1단계로 ‘어머니의 신뢰 얻기’라고 쓰고 함께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준호에게 쓰라고 했다. 준호는 다음 두 가지를 썼다.

  ① 학교에 지각, 조퇴를 하지 않아야 함 

  ② 주말에 친구들과 놀더라도 외박은 하지 않아야 함     


필자: 이게 가능할까? 이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어머니가 너를 믿으실 것 같긴 한데 말이야. 너무 무리한 전략을 짜면 실패하거든. 

준호: 가능해요.

필자: 어떻게?

준호: 지각은 안 할 수 있어요. 집에서는 항상 일찍 나오거든요. 학교 가기 싫어서 버스 안 타고 천천히 걸어와서 지각하는 거예요. 버스만 타면 지각은 안 해요. 조퇴는 아직 자신 없지만 좀 버텨봐야죠. 자퇴를 하기 위해서라면 주말 외박도 안 할 수 있어요. 늦게라도 집에 들어와야죠.     


3개월 전 3월 어느 날, 학교로 갈 버스를 그냥 보내고 정류장을 지나쳐 천천히 걸어가는 준호가 보이는 것 같았다. 준호는 친구도 없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 터벅터벅 걷다 보니 학교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를 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이다. 10시가 넘어버렸고 벌써 2교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망설이다가 교실 뒷문을 열자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빛이 쏟아졌다. 너! 뭐하는 놈이야? 학교를 이제 오는 거야? 다짜고짜 악을 쓰는 선생님의 목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자기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려 버렸다. 아이씨! 괜히 왔네. 아파서 늦게 올 수도 있지 않나? 왜 아무도 그렇게는 생각해 주지 않지? 물론 아파서 늦게 온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억지로 학교에 와서 비난과 무관심의 눈총을 받으며 엎드려 있었다. 이렇게 준호는 학교에서 부적응아로 낙인이 찍혀 갔다. 가족도 준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준호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외로웠다. 외박은 꿈도 못 꾸었던 자신이 주말마다 외박이 자연스러웠다. 점점 나쁜 아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무서웠다.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퇴라도 하면 이 무력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자신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도망치려는 비겁한 놈이라고 했다. 실패할 게 뻔한 선택을 고집하는 한심한 놈이라고 했다. 차츰 자기도 자신을 믿을 수 없고 형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자퇴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준호가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쏟아낸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준호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공감’이 되었다.     

    

필자: 우와! 대단하다.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네. 이 전략대로 한다면 엄마가 너를 믿겠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준호: 예.

필자: 학교에 가기 싫은데 어떻게 제시간에 집에서 나올 수 있었어? 결석도 안 하고? 신기하다.

준호: 남들은 제가 인생 포기한 줄 아는데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 학교가 다니기 싫은 것뿐이에요.

필자: 자퇴해서 새 출발 하고 싶은 거야? 인생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준호: 바로 그거예요! 

필자: 그럼, 이 전략을 얼마나 실천해야 엄마가 자퇴를 허락하실까?

준호: 지금이 6월이니까 여름방학 전까지는 해야 할 것 같아요.

필자: 그 정도면 될 것 같네. 자퇴하면 인생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잖아. 자퇴한 다음에 뭐 할 거야?

준호: 여름방학부터 빡세게 공부해서 검정고시 볼 거예요. 형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필자: 검정고시는 봐서 뭐 할 건대?

준호: 수능 공부해서 대학 가야죠. 오래 전부터 마음먹은 꿈이 있어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어요. 

필자: 그래? 꿈이 있어서 자퇴하려는 거구나! 그 꿈이 뭔지 알려 줄 수 있어?

준호: 으음~ 한번도 말한 적 없는데... 중1 때부터 국제통상학과에 가서 무역일을 하고 싶었어요.

필자: 어떻게 그런 꿈을 가졌어?

준호: 공부는 못하지만 영어로 말하기를 좋아해요. 외국 바이어와 만나는 걸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가슴이 뛰어요. 

필자: 아하! 자퇴하고 대학교에 가서 꿈을 이루고 싶은 거구나. 가슴 벌렁벌렁 뛰게 하는 꿈이 있어서 자퇴하려는 거였네!.  

준호: 으어엉~     


준호가 갑자기 으엉으엉 울음을 터뜨렸다. 준호는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소리 내어 고백했고, 그 꿈을 이루고 싶어 자퇴하려 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비웃음을 당할까봐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꼬깃꼬깃 숨겨 두어 배경(背景, ground)으로 처리되었던 꿈이 전경(全景, figure)으로 떠올랐다. 이런 현상을 게슈탈트 심리학에는 ‘알아차림’이라고 한다. 자퇴를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자퇴가 아니라 국제통상학과에 진학하는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한 달 동안 목숨이라도 걸듯이 투쟁해온 자퇴는 슬그머니 배경(背景)으로 물러섰다.         

 

준호와의 상담은 그날 2시간 1회기로 끝났다. 준호는 다음 날부터 정말 지각을 하지 않았다. 조퇴도 하지 않았다. 수업 중에 엎드려 자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퇴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바람대로 전통 있는 고등학교를 잘 졸업했고 무역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그 당시 준호의 담임교사가 신기하다고 했다. 말 한마디 안 하고 버티는 준호와 어떻게 2시간이나 상담을 할 수 있는지, 준호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준호의 부적응 행동에 초점을 두거나 자퇴하려는 고집을 꺾으려 들었다면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학교에 늦게 오는 준호를 제시간에 등교시킬 능력도, 정규 시간과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사라지는 준호를 교실에 붙잡아 둘 힘도, 죽어도 자퇴를 하겠다고 우기는 준호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진로상담 하자고 했다.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일단 치워두고 진로에 초점을 맞추었다. 진로는 모든 청소년에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고 희망이니까. 대체불가능한 존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임무을 찾아 가도록 안내해 주는 길잡이니까.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에너지이니까. 준호에게처럼. 


준호의 상담에서 저널테라피를 활용한 것은 아니다. 준호를 만난 때는 2008년이고, 청소년과 함께 저널테라피를 하기 시작한 때는 2009년이다. 그런데 준호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 준호는 그날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끄집어 내고, 꿈을 되찾음으로써 지각, 조퇴, 외박 등의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었다. 이 힘으로 학교생할과 가족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자퇴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던 길을 찾아 대학교에 진학했다. 준호의 상담처럼 극적인 효과를 경험하는 상담이 내게 흔치 않아서, 감사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이 경험은 저널테라피를 통해 청소년과 함께 무엇을 할까 고민할 때마다 지혜로운 답이 되었다. 청소년들이 자기답게 살아가도록 돕고자 하는 데 저널테라피의 목적을 두고 무엇을 할 것인지 한 걸음씩 나아갔다. 청소년의 심리, 학습, 진로가 자신이 쓴 저널 안에서 한 줄기 물처럼 흐르기를 바라면서. 존재의 바다로 흘러가길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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