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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Jun 14. 2024

Ⅱ부-2. 수능을 겪는 고3 아이들 이야기 2)

2) ‘도희’ 이야기, 낯선 새벽을 또 맞이하다

2011년 수능 직전 저널테라피를 함께한 아이들 이야기 중 두번째 이야기이다. 도희를 1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저널테라피 경험을 정리했다. 도희의 동의를 받았으며 이름은 가명이다.  


불안감 속의 느긋함 항상 즐겁게 살고 싶었다. 이런 나답지 않게 수능을 앞두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불안이 나를 긴장시켜 공부에 집중하게 하지는 않았다. 불안한 것 같은데 공부를 하지 않았다. 느긋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긴장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서 더 불안했다. 그러던 중 뭐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해서 가희랑 저널테라피에 참여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불안은 여전히 살얼음마냥 마음 위로 동동 떠다녔지만, 불안을 무시한 채 친구들이랑 웃고 수다를 떨었다. 저널테라피를 하면 나를 잡아줄 거라 기대했지만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어쩌자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처음에는 귀찮기만 헸다. 괜히 한다고 했나? 하는 후회를 여러 번 했다. 20분 정도의 짧은 자투리 시간이지만 이 시간도 수능 직전에는 아까웠다. 이런 생각이 저널 쓰기를 방해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저널을 솔직하게 쓰지 않았다.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낯선 그 감정을 무시하고 회피했다. 못 본 척 모르는 척 하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살아온 것처럼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수능에서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 돌봐 주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나는 1교시부터 불안에 압도되었다. 언어영역 비문학 지문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글씨가 써진 것인지 읽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수능을 망치고 이틀을 울었다.     


즐거운 세상을 꿈꾸며 저널을 쓰면서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를 위로하는 작업에는 서툴렀지만, 즐거운 일이나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글을 쓸 때에는 기분이 좋았다. 4회기 내가 기뻐하는 일들에 대해 쓰면서 가장 행복했다. 수능만 아니라면 세상에도 미래에도 즐거운 일들이 널려 있다. 즐거운 일들만 생각하고 살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로 하여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 3회기에서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보며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꼭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 

건축가로서 멋진 건물도 지어보고 싶고, 

동물도 잔뜩 키워보고 싶고, 

마케팅으로 제품도 팔아보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고, 

여행도 잔뜩 다니고, 

효도도 하고, 봉사활동도 해보고 싶다. 

그밖에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다. ......

나는 꽉 차게 살아가고 있다고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와! 저 사람 참 멋지게 살아가네.”라고 불릴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의 3회기 저널 중)   

  

가지 않은 길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건축과 마케팅이다. 이 둘 사이에서 팽팽하게 고민하였다. 미래 사회에서는 이 둘을 융합시켜 직업세계로 창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 길을 선택하고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두 길을 다 가지 못해 안타까워 할 것이다. 7회기에서 ‘내 인생 최고의 날’을 주제로 미래 일기를 썼다. 쓰면서 좀 부끄러웠다. 꿈이 거대한 것 같고, 이루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쓰기가 망설여졌다. 쓰는 것조차 무서워하면 안 될 것 같아 적어 봤는데, 선생님이 내 이야기의 뒷부분을 이어서 써주셨다. 내 상상의 무대에 선생님이 함께 등장하니 현실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꿈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선 내가 박수갈채를 받는 듯했다.      


또 다시 낯선 새벽에 서서 평소 느긋하던 나는 엄청난 긴장감으로 수능을 망쳤고 입시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학을 낮춰서 갔다가 편입을 해야 하나? 과는 어디를 선택해야 하나? 마케팅인가? 건축인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2회기에 썼던 저널이 생각났다. 무서워서 울며 서있었던 그 낯선 공항의 새벽이 생각났다. 혼자서 그 새벽을 버텨냈고, 16살의 새벽을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제일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16살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교환학생을 갔을 때이다. 비행기를 타는데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낯선 공항에서 혼자 기다렸다. 티켓을 받고, 비행기 타기까지 혼자 다 했다. 그때 무서워서 울었었다. 4시간 동안 2번째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가방 3개를 들고 한 자리에 있었다. 돌아다니거나 잠들면 큰일날까봐. 모든 비행을 마치고 무척이나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의 2회기 저널 중)  

   

이제 나에게 또 다른 새벽이 온 것 같았다. 선생님 말씀처럼 과연 이 새벽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저널에 담겨진 수많은 내 미래의 즐거운 이야기들을 위해 이 새벽도 잘 지나가고 싶었다. 

     

마케팅을 선택하여 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1학기 동안 노력한 결과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또 하나의 낯선 새벽을 이렇게 지나왔다. 내가 선택한 이 길 위에서 나는 새로운 저널을 써갈 것이다.     

 


덧붙이는 이야기

도희는 첫 인상부터 밝았다. 도희는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수능을 앞두고 불안했다. 공부를 안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수능 직전 대부분 학생들의 심리를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도희는 워낙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힘든 일은 빨리 잊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저널테라피의 주제들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다. 불안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널테라피의 도움 여부가 체감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렇게 느긋한 도희가 극도의 긴장감으로 수능을 망치고 말았다. 수능에는 실패했지만 프로그램 참여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마케팅과 건축 중 마케팅을 선택하였고 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저널테라피를 통해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점들을 강점으로 바꿔 생각할 줄 알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가지게 되었다. 도희는 자신의 저널을 ‘미래에서 온 일기’라고 했다. 도희는 자신이 쓴 대로 미래에서 이 꿈들을 이루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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