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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Jun 12. 2024

Ⅱ부-2. 수능을 겪는 고3 아이들 이야기 1)

1) ‘가희’ 이야기: 수능을 넘어 가능성 앞에 서다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2011년 수능 직전 저널테라피를 함께한 아이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가희 이야기, 도희 이야기, 문희 이야기, 상희 이야기, 주희 이야기, 태희 이야기 중 첫번째 이야기이다. 가희를 1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저널테라피 경험을 정리했다. 가희의 동의를 받았으며 이름은 가명이다.  


조급한 마음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저널테라피에 참여했다. 수능을 한 달 앞두고 머리 속은 온통 EBS 교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걸 다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다. 수능을 잘 봐야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속이 타들어갔다. 나를 믿고 기대하는 것은 고맙지만 부담스러웠다. 좋은 대학에 가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2회기 저널에 털어 놓았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부모님은 지금처럼 나를 소중하게 여기실 것 같아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 날 좀 내버려 뒀음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부모님께서 특정대학교를 거론하시면서 ‘어디 학교 갔으면 좋겠다.’이런 말씀하실 때가 있다. 지나가는 말로 하시는 소리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그 학교를 갈 수 있는 실력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짜증날 때도 있고 부담스럽다. 친척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도 싫다. 격려 정도만 해주고 구체적인 것들은 궁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2회기 저널 중)


막연한 진로 장차 뭘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것은 고1 때였다. 그 전까지는 무조건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제대로 안 된다는 이유로 여전히 교사나 공무원을 권유하신다. 그러다 보니 나도 갈팡질팡하게 된다. 어느 날은 공항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려 보다가 어느 날은 일찍부터 공무원 준비나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수능 성적이 되면 교대를 갈 것 같기도 하다.   

   

미래를 상상하고 진로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미래에 대해 자꾸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는데 7회기를 하고나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다. 7회기에는 4회기 때처럼 두 가지 저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하나는 30살 때 성공한 직업인으로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인데 잘 쓸 자신이 없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만 성공한 나를 상상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그래서 내 나이 30살, 내 인생 최고의 날을 상상하며 일기를 쓰는 저널을 선택했다. 최고의 날이라 하긴 좀 부족했지만 30살에는 꼭 이렇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7회기 미래 일기를 씀으로써 나는 능력 있는 직업인과 좋은 엄마를 꿈꾸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구체화되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수능이 전부였지만 저널테라피를 해서인지 평소와 달리 수능 당일에는 거의 긴장을 하지 않았다. 시험도 잘 볼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 자신감이 수능 대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수능을 보고 나서 꿈에 대한 확신도 사라졌다. 공항공사 관리가 꿈이었는데 이젠 부모님 뜻대로 공무원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펼쳐 본 나의 저널. 수능이 끝나고 이 저널을 썼던 것을 잊고 있었다. 5회기 저널에는 오로지 수능을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5회기를 하면서 수능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덜어지는 듯하면서도 수능에 매달리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평소에 모의고사를 많이 보는 고3에게 그냥 한 가지 마지막 모의고사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해도 수능에서 못 보면 그전 것들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특히 학벌이 중시되는 이 사회에서는 대학이 중요하고 이 대학은 수능 점수로 나누기 때문에 부담도 되고 망치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강하다. 수능은 내가 어떤 삶을 살게 할지 정해지는 시작인 것 같다. (나의 5회기 저널 중)


가희야! 지금은 수능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진 기준으로 느껴지지?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른 다음에 보면 성공도 실패도 모두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더라. 다만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에 대한 후회가 없다면 수능에 대한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어. <중략> 평소에 보는 모의고사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선생님의 5회기 피드백 중)    

 

선생님의 피드백이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다시 읽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최선을 다 했지만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 실패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냥 위로를 가장한 무의미한 말이다. 그런데 피드백을 자꾸 읽다 보니 마치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졌다. 과연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수능을 잘 못 봤다고 입시가 끝난 것도 내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러다가 정말 후회하고 말 것인가? 논술 전형이 남아 있다.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일찍 저널을 다시 읽어 봤으면 그 깊은 우울의 구렁에서 좀 더 빨리 빠져나왔을 것이다. 저널조차 없었다면 아마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됐을 것 같다.  

    

가능성의 시작 드디어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고 더없이 행복하다. 3월초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또 무한한 가능성을 말씀하셨다. 그렇다. 저널은 수능만 바라보던 내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시작이 되었다.       



덧붙이는 이야기

가희에게 대부분 고3 학생들처럼 수능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진로가 구체적이지 않지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이 중요했다. 그 수능 앞에 선 가희는 조급했다. 2회기를 통해 수능 직전의 조급한 마음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수능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진로 희망과 부모님의 희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런 가희가 7회기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하였다. 7회기 저널에서 가희는 자신이 꿈꾸는 ‘커리어우먼’과 ‘좋은 엄마’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분야의 커리어우먼인지 세세한 색칠을 아직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뚜렷한 터치로 스케치를 한 가희가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여기까지의 그림을 그려 놓고 있었구나. 아니면 저널테라피를 하면서 이런 그림이 그려졌을까? 한편, 기대에 못 미치는 수능 결과에 좌절했으나 자신의 저널을 읽으며 우울감에서 벗어났다. 저널을 쓴 자신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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