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태희’ 이야기, 마음에 작은 방이 생기다
2011년 수능 직전 저널테라피를 함께한 아이들 이야기 중 마지막 이야기이다. 태희를 1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저널테라피 경험을 정리했다. 태희의 동의를 받았으며 이름은 가명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저널테라피를 시작하는 즈음에 너무 우울하고 불안했다. 교실 자리 이동 때문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가뜩이나 예민한데, 제비 뽑기로 교실 뒷문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이들이 들락거리고 소란해서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최악의 자리였다. 항상 누군가는 그 자리에 앉았겠지만 그 자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사소한 문제가 장애가 될 줄 몰랐다.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뭔가 조짐이 이상해. 이러다 3년 애써서 공부한 게 무너지는 거 아닐까? 수능까지 망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내 마음을 뒤죽박죽 헝클어 놓았다. 불안감에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북소리 나듯 둥둥거렸다. 병원에 가봐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저널테라피를 하게 되었다. 대숲에서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소리를 지른 신라의 두건장이처럼 저널을 쓰면서 소리를 질렀다.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저널에 쏟아냈다. 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음을 털어 놓은 것으로 조금 후련해졌다. 선생님은 피드백을 통해 내 마음을 공감해 주셨다. 많이 힘들고 외롭던 마음이 차츰 나아지고 안정을 찾아 갔다. 저널을 쓰고나면 머리가 휴식을 취하고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통의 즐거움 2회기에서는 자랑스러웠던 중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을 저널에 썼다. 선생님도 같은 경험이 있다고 하셔서 왠지 반가웠고 기분이 좋았다. 3회기 박노해의 ‘너의 하늘을 보아’를 읽는 순간 ‘CHAMP’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가사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전달하는 메시지가 시와 느낌이 비슷해서 3회기 저널을 쓰면서 속으로 대충 흥얼거렸다.
내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내가 꽃 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나의 하늘을 보아
가끔, 아니 때론 캄캄한 어둠이 나를 가두어 앞이 보이지 않고
나에게만 나쁜 일이란 일은 다 몰아쳐 일어나는 것 같을 때
그냥 그 자리에 앉아버리고 그만두고 싶을 때 있지.
바로 그때 잊혀지지 않는 노래, 긱스의 ‘champ’
힘들어도 쓰러지지 않고 울면서라도 가는 것은
내가 처음 목표한 바. 그 간절히 원하는 마음 때문이야.
힘들어도, 내 앞의 상황이 너무 막막해도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반짝이는 ‘하늘’이 있으니까!
지금은 괴로운 상황에 잠시 잊었을지 몰라도. (나의 3회기 저널 중)
“그대가 바로 승자예요.
그대의 마음에 /그대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이 거친 세상에 / 자유를 원하는 그대가 바로 승자예요.♪♪♪”
태희야! 긱스의 ‘champ’를 들으면서 많은 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겠지만 나는 태희의 가슴에 이 가사가 남아 있으면 하는 소망으로 여기에 적어 보았어. 태희! 태! 희! 그대가 바로 승자에요.
(선생님의 3회기 피드백)
‘이 거친 세상에 자유를 원하는 그대가 바로 승자예요.’ 선생님이 써주신 그 부분이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였다. 왠지 듣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온 몸에 퍼지는 듯했다. 잊어버렸던 긱스의 ‘CHAMP’ 가사 일부를 선생님이 써주셔서 선생님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널이라는 관을 통해 오고가는 게 재미있었다.
어렵다지만 간절한 꿈 7회기 ‘나의 진로’에 대한 마인드맵을 하는데 드문드문 막혀서 펜을 멈추곤 하였다. 사실 변리사가 정말 되고 싶지만 주변에서 자주 말하는 그 ‘어려움’이 가슴 한구석에 계속 켕기고 있었던 걸까.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지만 노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어 조금 두렵기도 하였다. 부모님은 약사나 치과의사를 추천하면서 그 직업을 하고나서 변리사를 해도 늦지 않다고 하신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특허권에 관한 일을 하고 싶었다. 변리사가 되어 일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선생님은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셨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7회기 인터뷰 쓰기는 어려웠다.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시기인지라 정말 저렇게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떳떳이 신문 1면에서 웃고 있을 자격이 있을지 걱정이 됐다.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 행복할 것 같았다. 가장 만족한 회기는 8회기였다. 8회기는 수능 직전의 나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 속에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정말 이루고 싶은 여러 목표들을 적으면서 인생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쓰면서 용기가 났고 정말 할 수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이 중 4개는 벌써 이루어졌다. 신나고 신기하게도.
나의 작은 방 마음 안에 작은 방이 생겼다. 불안하고 힘들 때 들어가서 평화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저널을 ‘작은 방’이라고 부른다. 저널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나를 꿈꾸게 하였다. 내 속에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펼쳐 놓을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었다. 마음 편하게 드러누울 수 있는 작은 방처럼. 자신감이 부족하고 소심한 내게는 안정감을 느끼게 할 작은 공간이 필요하였다. 나는 이 작은 방에서 충분한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면 힘차게 방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변리사도 이 작은 방에서 시작될 것이다. 공부만 생각하며 살던 수능 직전 그 시간에 뜻하지 않게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덧붙이는 이야기
태희는 담임교사가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공부는 잘하는데 시험불안이 심해서 수능 때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태희는 매우 성실하고 겸손한 성품을 지닌 참한 학생으로 보였다. 태희는 교실 자리 문제로 몹시 힘들어했다.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뒷자리에 앉게 되어 심리적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물리적 공간의 문제가 태희의 마음을 산란하게 흔들어 놓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너무나 사소한 문제라서 말하기가 민망했다. 그런데 손톱 밑 가시처럼 성가시게 하고 불안하게 했다. 어이없게 집착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답답함을 털어놓음으로써 태희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태희는 자신과 남을 재는 잣대가 각각 달랐다. 남을 재는 잣대는 매우 너그러운 반면에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매우 엄격하였다.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긍정적 상담 피드백조차도 낯간지럽다며 어색해 했다. 그런 태희가 차츰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인생 전체를 통찰하는 안목이 생긴 것 같았다. 태희는 저널을 ‘작은 방’이라고 했다. 이‘작은 방’에서 불안도 걱정도 다 가라앉히고 편안한 마음으로 ‘CHAMP’의 ‘승자’가 되었다. 통과의례로 받아들이겠다는 수능을 무사히 잘 치렀고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태희는 변리사의 꿈을 가슴에 품고 1학기 장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