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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구문

by 남청도

새벽에 공치러 나가면서 현관문을 여니 오늘 신문이 현관문앞에 떨어져 있었다.

신문을 주워서 현관문 안으로 던져 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코트로 향했다.

한시간 정도 운동을 한 후 샤워를 하고 나오니 몸도 날아갈듯이 가볍고 기분도 좋다.

집에 들어와서 아침을 한 숟갈 떠 먹고 오늘 신문을 찾으니 여기 저길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집 사람이 먼저 보고 아무데나 툭 던져 놓은 모양이다. 그래 놓고선 병원으로 출근하면서

아침 잘 챙겨 드시라고 전화를 했다. 속으론, '아침 못 챙겨 먹을가봐 전화는...' 내뱉고 싶었으나 꾹 참고 있다가

"오늘 신문 어디 뒀소?"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랬더니 "부엌에나 안방에나 한번 찾아보소"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알았어!"하고 끊었다.


전화를 귾고 거실 헌 신문 모아 두는 데와 부억, 안방 그리고 안방 화장실까지 둘러봐도 오늘자 신문은 보이지 않았다.

신문이 발이 있어 어디 농 밑으로 기어들어갔나?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오늘 신문이라고 특별히 볼 기사가 있는 것은 아닐테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은 04시37분 기상함) 인터넷으로

네이버에서 대략적인 기사는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종이신문에 오랫동안 정이 들어 있기 때문에 두툼한 종이신문을 뒤적뒤적 넘기면서 보아야만 신문을 보는 재미를 느낀다. 그러다가 흥미있는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도 해 둔다.


고등학교시절에는 신문 연재 무협소설에 빠져 새벽에 신문이 오면 연재소설부터 먼저 읽었다. 동아일보 비호였다.

그러다가 유신시절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쓰는 칼럼에 이끌려 조선일보로 바꾸었다. 요새는 총칼과 권력에 굽히지 않고 올바른 정신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위정자들의 잘못을 통렬히 나무라는 그런 나라의 어른이 없다.

예전에 기자라면 그래도 지식인에 속하고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자긍심도 가졌다. 그런데 요즘은 정경언론 유착이니 뭐니 할 정도로 타락한 세상이 돼 버렸다. 위정자들이 잘못하면 지적하여 시정토록 하는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어찌된 판인지

일부 바른말 하고 부정을 폭로하는 기자들을 오히려 공격해 대는 사이비 기자들도 날뛰고 있으니 세상이 어찌될런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신문을 찾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지나간 구문을 몇장 들췄다. 날짜가 지나간 신문도 구문이라 하지 않고 신문이라 한다. 신문(新聞)이란 '새로운 뉴스' 영어로는 'Newspaper:(뉴스백서(?)'라고나 할까? 지나간 신문은 신문이 아니라 이미 생명을 다한 구문이다. 그러니 예전에는 화장실 뒷처리용으로도 나가고, 과수원에 광리 싸매는 봉지로도 팔려나갔다.


지나간 구문을 펼치다 보니 타이틀만 훑고 넘어간 기사들이 더러 보였다. 내가 아침에 신문을 볼 때는 다른 식구들도 보라고 필요한 기사도 스크랩 하지 않고 대충 보고 거실에 던져 두는 데 다른 식두들이 넘겨 보고는 아무데나 팽개쳐 두는 경우가 많아 종종 스크랩을 빠뜨리는 경우도 생긴다. 스크랩을 하는 이유는 다음에 글을 쓸 때나 필요할 때 한번 더 찾아보기 위해서다. 오늘 구문에서 보니 '인물과 서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40.번째로,'한국학의 거함'이규태가 나왔다.


그는 별세 별세 이틀전까지 23년간 6702회 연재를 했다. 그는 동사고금을 오가며 시사를 풀어 냈는데 나도 그의 칼럼을 좋아했다. 6702회라면 상당히 장수한 칼럼이다. 그에 비해 우리 카페는 독자는 적지만 얼마전 8888회를 넘겼으니 상당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듯 하다. 비록 많은 필진들이 참여하지 않아 마담이 대충 엮어 나가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씩 거들어 주는 종찬이나 규성이가 고맙다. 당초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리라고 기대하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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