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장려

by pahadi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아이가 어렸을 때 너무 아끼려고만 한 것이다. 장난감도 옷도 다 얻어 입히고 심지어 젖병 사는 것도 아까워했으니까. 그래도 백일, 돌 사진은 찍어줬다 위안 삼는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이 너무 미안하고 아쉽다.


돈이 아까워 영어학원 그만둔 거라든지, 비싼 레스토랑 한번 못 가본 거라든지, 발령 대기 때 여행 안 간 거라든지, 여행 가서도 아낀다고 제대로 못 즐긴 거라든지, 싼 것만 찾다가 오히려 돈 버린 일이라든지, 뷔페에서 본전 찾는다고 먹다가 체한 일이라든지. 돌아보면 절약이라는 미명 아래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 아끼는 것에 급급해 못 즐긴 것들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뭐, '지금이라도 해!', ' 즐겨!'라고 말해도 '다 때가 있는 거야', '늦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 역시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 특히 나는 비싼 음식을 먹는 게 너무 아까운데 어차피 먹고 나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에 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너무 비싸다. 근사한 분위기 속에서 맛난 음식을 즐긴 경험과 추억이 내 인생에 사부작 녹아드는 건 계산 못했다. 내가 그때 거기서 참 행복했지라는 만족감은 그때 좀 해볼걸이라는 후회에 비하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래도 선뜻 비싼 레스토랑 예약하기는 좀 그런데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꼭 가봐야지.


이런 내게 참 어울리지 않은 신용카드가 하나 있다. 연회비가 꽤 비싼 카드다. 대신 항공권, 호텔, 공연과 관련된 쿠폰이 제공된다. 몇 년 전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조금이라도 싸게 가볼까 하고 찾아보다 알게 된 카드다. 이 카드 혜택으로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입해 다녀왔는데 몇 년이 지나도 해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 카드가 아직까지 내 지갑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지금은 이 카드가 단종되어 다시 만들 수 없다. 해지하면 끝이라 차마 결단을 못 내렸다. 둘째, 돈은 아끼고 싶지만 게으르다. 카드 할인쿠폰을 사용하지 못한 채 연회비 납부일이 다가오고 허겁지겁 쿠폰을 사용하면 어느새 연회비가 납부되어있는 현실. 카드를 해지하는 것도 부지런해야 한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나 다시 연회비 납부일이 왔다. 시간 참 빠르다. 특히 납부기일은 더 빠르다. 코로나 19도 겹쳤으니 진짜 해지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민, 고민 끝에 결정했다. 해지하지 않기로. 우리 집 가계부에 가장 쓸데없고 고가이며 사치인 이 카드를 유지하기로.


일단 연회비를 내면 연회비가 아까워 호텔이든 여행이든 공연이든 꾸역꾸역 이용하게 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돈이 아까워하지 않을 것들이다. 좀 즐기며 살자는 내가 좀 아끼며 살자는 내게 복선을 깔아 둔다. 그렇게 좋은 공연도 한 번 보고 비싼 호텔도 한 번가 보고 시간과 여력이 되면 비행기도 좀 타보고 살자. 참 말 안 듣는 내게 잘 통하는 방법이다. 가끔 깜빡깜빡하는 기억력의 도움으로 공짜같이 느껴지면 금상첨화고.


소비를 조장한다. 아니, 가끔은 소비를 장려한다. 가끔은 삼시 세 끼 말고 간식도 먹어줘야 살맛 나는 거니까. 쓸모없는 짓을 해봐야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를 알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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