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기다리며 견뎌온 월, 화, 수, 목, 금. 드디어 주말이 왔다. 하지만 주말이라고 마냥 편히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양가 행사를 챙기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준이 시중을 들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세탁기 수리라도 맡겨야 하는 게 나의 주말이다. 쇼핑을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던 주말이 언제였는지 미세먼지 낀 요즘 날씨보다 더 아득하다.
봄 때문인지 이번 주말만큼은 정말 살랑살랑, 감성 충만하게 보내고 싶다. 미리 준비해둔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도 읽고 꽃구경하는 다정하곰도 그리고 켜켜이 쌓아둔 일기도 좀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의 여유가 곧 누군가(주로 남편)의 다망을 의미하니 양심상 훌쩍 나가버릴 수도 없다.
일요일,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나 이따가 저녁에 나갈 거야." 오후에 남편이 쉬고, 저녁에는 내가 외출하기로 지극히 양심적인 통보를 한다. 그래도 입은 부르트고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 남편에게 미안해 준이도 돌보고, 빨래도 돌리고, 청소기도 돌린다. 이른 저녁을 먹고 준이도 씻겼더니 벌써 6시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9시 전에는 돌아와야지. 목적지는 동네 카페로 정했다. 거기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려야지. 2박 3일 정도 걸릴 것 같은 계획들을 줄지어 세운다.
마음은 이미 카페에 도착했건만 너무 바쁘게 움직인 탓인지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소파에 앉았는데 땅이 꺼져라 가라앉는다. 잠깐만, 잠깐만 하는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금세 세상에 어둠이 깔린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는데, 잠옷을 입은 준이까지 어서 다녀오라며 손을 흔드는데, 가방을 들고 현관문만 열면 되는데, 슬슬 눈꺼풀이 감긴다. 이게 아닌데. 진짜 아닌데. 내가 이러려고 그 부지런을 떤 게 아닌데.
그렇게 일요일의 막이 내렸다. 슬슬 정신을 차리니 아득한 새벽. 그토록 고대했지만 이리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주말이다. 아끼고 아끼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을 보는 심정. 스멀스멀 녹은 아이스크림은 점점 형체를 잃어간다. 다음에 또 사줄게라는 의미 없는 위로처럼 또 다른 주말이 온다고 부질없는 위로를 건넨다.
더 이상 나의 위시리스트는 세계 여행이나 스카이 다이빙이 아니다. 그저 집 앞 카페에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체력 조절을 좀 더 잘해봐야지. 봄이 가기 전에 꼭 <다정한 매일매일>을 읽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