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수집가

by pahadi

주말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아침은 어제저녁이었던 닭죽을 데워먹고 가족들이 일어나면 가까운 공원에 산책 다녀와야지. 쌀이 떨어졌으니 쌀도 주문하고 몇 가지 장도 봐야겠다. 점심은 뭘 먹을까.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계획을 세워본다.


2년 후에는 전에 살던 동네로 이사 가야지. 그럼 직장이 조금 멀어질 텐데 몇 시에 출근해야 하지. 나중에 작은 책방을 열고 싶다. 어디가 좋을까. 강화도나 수원 행궁동 쪽이 좋겠다. 양평도 좋은데 조금 추우려나. 10년 휴가 때는 어디에 갈까. 치앙마이에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겠지. 휴가를 다 끌어다 모으면 얼마나 머물 수 있을까.


상상에 가까운 계획들이 이어진다. 이룰 수 없든, 이룰 수 있든, 이루려고 하든, 이루려고 하지 않든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 안정감이 든다. 깜깜한 밤의 망망대해 같은 앞날에 희미한 별빛을 흩뿌려놓는 것 같다. 이렇게 살면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상상의 지도가 인생 초행길인 나에게 든든한 동아줄이 된다.


최대한 여러 계획들을 세워둔다. 아니, 최대한 여러 미래를 상상해 본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플랜 B가 등장할 수 있도록. 내 계획들이 어그러져도 당황하지 않도록. 계획이란 원래 그런 거라는 옵션도 살짝 넣어둔다.


이렇게 살면 되겠네. 든든하다. 걱정할 필요 없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충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