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빨래 말리기

by pahadi


때론 해가 뜨고, 가끔 비가 오고, 또 언제쯤은 눈이 오는 일이 기이한 일이 아니듯, 내 기분도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기분이 좋을 때야 별 문제없지만 가끔 기분이 젖은 빨래처럼 속수무책 가라앉을 때가 있다.


이유는 많다. 4월이라서, 봄이라서, 쌓인 메일이 많아서, 어젯밤 잠을 잘 못 자서, 너의 말투가 기분 나빠서, 네가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서... 그 외 다수. 이유는 많은데 해결책은 모르겠다. 내가 이래서 수학이 좋다니까. 딱 떨어지는 정답이 주는 그 명쾌함. (그렇다고 수학을 잘했다는 건 아니고요...)


어쨌든 이 난관에 도움을 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젖은 빨래를 말릴 방법을 강구한다. 하루 2-3잔에서 하루 한잔으로 줄이고 그것도 모자라 일주일에 1-2잔으로 줄여야 했던 그 귀한 커피를 마셔야지. 오늘은 바닐라 시럽도 추가하겠다. 아니, 그것보다는 따뜻한 라테와 부드러운 스콘, 클로티드 크림! 3 총사가 좋겠다.


그리고 우울의 최고 비약. 쇼핑도 좀 해야겠다. 봄이니까 산뜻한 꽃무늬 원피스를 좀 사볼까. 이럴 때는 웬만하면 어느 정도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현명하다. 쇼핑의 만족도를 위해서. 기분 전환 삼아 쇼핑하겠다고 나섰다가 형편없는 물건 때문에 더 슬퍼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내가 이 정도 물건밖에 안 되는 사람이란 말이야?라는 자기 비하까지 갈 수 있으니 주의할 것.


그다음은 독서 세러피. 책을 봐야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물건 자체의 가격뿐만 아니라 그 물건을 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의미한다. 침대 가격 더하기 침대를 둘 공간의 가격 까지랄까. 읽고 싶은 책은 참 많은데 시간 확보가 안 된다. 아니, BTS도 사생활이 있을 텐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시간이야 만들면 되는 것. 책을 읽으려면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겠다. 피곤하면 커피를 좀 더 마시면 되고. 생각해보니 일석이조네.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며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를 무한 재생하며 버킷리스트를 업데이트한다. 카메라 수업 듣기. 독일 펀파크 가기. 독립 서점 탐방하기. 초특급 떡볶이 레시피 완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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