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기 위해서

by pahadi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에 앞산을 오르다가 열쇠를 잃어버린 에피소드가 나온다. 며칠 동안 땅바닥만 보며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다녔는데 결국 열쇠를 찾지 못했다. 자식에게 맡긴 열쇠를 찾아와 한시름 놓고 다시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며 앞산에 올랐는데 이런, 잘 보이는 나뭇가지에 열쇠가 떡하니 걸려있었다.


이렇게 잘 보이는 것이 왜 그때는 보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친절함도, 찾아 헤매던 열쇠도, 아름다운 경치도 마음 급한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에는 그 어떤 좋은 것도, 그 어떤 재미난 것도 들어올 자리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길을 잃기 위해서"라는 노래가 있다. "길을 잃기 위해서 우린 여행을 떠나네"라는 가사가 참 좋다. 그래, 여행은 길을 잃어야 제 맛이지. 인생은 헤매야 제맛이지. 지름길 대신 에움길을 택하는 순간, 길을 잃기로 마음먹는 순간, 헤매는 나를 인정하는 순간. 진짜 열쇠가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도도 없는 인생, 정답도 모르는 인생인데 속는 셈 치고 헤매어볼까? 마지막 종착지에서 여기저기 구경 잘했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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