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라고 하는 선언.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저자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이들을 세계 최고 부자가 되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하고 벌써부터 옥스퍼드에 갈지, 케임브리지에 갈지 고민하기도 한다. 자신이 영어를 너무 잘하게 돼 한국말을 잊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은 정말 아이답게 깜찍하다.
이런 허세. 귀여운 허세. 저자의 말을 따르면 '부풀리기'. 아이들의 부풀리기를 듣다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이 나의 미래가 될 줄 알았던 그때, 그것이 당연하다 믿었던 어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아주아주 부자가 되어 전 세계를 여행하기도 하고, 가끔은 해르미온느처럼 마법사가 되어있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힘으로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런 상상만으로 하루를 거뜬히 보내던 날들이 이제는 까마득하다. 한 뼘씩 자랄 때마다 한껏 부풀었던 인생은 점점 작아졌다. 세상에는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의 세상은 더욱더 좁아졌다. 무언가 되겠다는 상상은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어차피 될 리 없으니까.
그렇게 귀여운 허세를 잃어버리며 어른이 되었다. 부풀리기를 잃어버린 우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어른들이 늘 제자리인 이유는 이 깜찍한 허세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우리는 스스로 그어놓은 경계선까지만 여행할 수 있다. 돌고 돌아도 언제나 똑같은 풍경, 똑같은 나, 똑같은 인생. 이제 더 멀리 가보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
오늘부터 다시 허세 좀 부려볼까? 예전처럼 귀여운 허세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허세라면 지금도 할 수 있겠다. 10년 후쯤엔 여행을 하며 전 세계에 친구를 만들고, 딱 보면 내 것이다 알아볼 수 있는 글과 그림을 그리고, 몸 튼튼 마음 튼튼한 사람이 될 거라고 호언장담해 본다. 여기까지 내 세계를 넓혀보겠다고 선언해본다. 그 부풀리기가 두둥실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