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초의 기억은 눈밭에서 시작한다. 하얀 눈밭 위에 노란 우주복을 입은 아이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아마 3살쯤 되지 않았을까. 그 시절 남겨둔 사진과 엄마가 전해준 이야기로 조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자세히 생각난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진 날이었다. 온 세상이 눈 나라가 되었을 무렵 젊은 엄마는 아이 둘을 데리고 눈 구경을 나왔다. 귀한 카메라도 함께였다. 이 카메라는 출장 다녀온 남편이 큰 맘먹고 사온 일제 카메라다.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남편은 늘 출장 중이었고 따뜻한 밥과 일제 카메라가 그 빈자리를 대신했다.
엄마는 아이들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나무에 바짝 붙어봐" "눈도 뿌려 보고" "자- 김치" 이런저런 주문 끝에 엄마는 나에게 눈 위를 굴러보라고 했다. 나는 온통 하얗게 변한 세상 앞에 어리둥절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에 땅과 하늘의 경계가 무너졌다. 눈 덮인 그곳은 내가 아는 동네가 아니었다. 엄마의 지시에 나는 얼떨결에 하얀 눈 바닥에 누웠다. 두꺼운 옷 덕분에 하나도 춥지 않았다. 누워서 바라본 세상은 더 낯설었다. 눈 위로 눈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갑자기 두꺼운 옷 사이로 서늘함이 밀려왔다. 엄마의 품을 떠나 내가 살아내야 할 낯선 세상을 처음 경험한 날이었다.
처음 세상에 태어나 느꼈을 당혹스러움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이 내 기억 속 최초의 낯섦이었다. 낯설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때의 서늘함은 선명이 기억난다. 쉽지 않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게 익숙한 세상이 돌연 낯설어지고, 낯선 세계로 옮아가 다시 익숙해지기를 반복하며 나는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