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생일

by pahadi

유치원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유치원 교실에 들어갈 때 아이들이 구경난 듯 쳐다보는 게 싫었고, 네모난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되는 게 싫었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장난을 거는 게 싫었고,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모르는 질문이 오는 게 싫었고,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 해 참기만 해야 하는 게 싫었다. 무엇보다 엄마랑 떨어지는 게 너무 싫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도 딱히 나를 억지로 보낼 생각은 없어서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날은 꼭 유치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7월 생일인 아이들의 합동 생일파티가 있는 날이었고 내 생일이 바로 7월이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엄마는 내게 한복을 입혀주셨다. 한복은 좋았지만 유치원은 싫었다.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셨다. 예쁘게 단장하는 건 좋았지만 유치원에 가는 건 싫었다. 유치원 봉고차가 우리 집 앞에 들어서자 나는 엄마의 을 잡고 늘어지며 절대 가지 않겠다고 사투를 벌였다. 결과는 참패였다. 나는 양손과 양발을 엄마와 선생님께 붙잡힌 채 봉고차에 실렸다.


유치원은 생일파티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케이크와 떡, 각종 과일과 과자들이 차려져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나는 시무룩하게 생일 주인공들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주목받기 싫어하는 나에게는 가장 최악의 상황. 하지만 더 최악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 남자아이에게 나에게 가서 볼 뽀뽀를 하라고 시켰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나의 동의도 없이? 남녀가 유별하거늘! 나도 이제 알 거 다 안다고, 싫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외쳤지만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은 차마 입 밖을 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볼뽀뽀를 하고 그 순간은 찰칵 사진 속에 남았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유쾌하지 않은 순간이 사진 속에 기어코 남고 말았다(누구를 위한 이벤트였나). 이 사진은 한동안 야속한 어른들의 가벼운 놀림거리가 되었고 나는 더더욱 유치원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더욱 가아아끔 유치원에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참 관대했다. 나라면 아이가 사회 부적응자가 될까 전전긍긍하며 어르고 달래고, 화를 내서라도 유치원에 보내려고 했을 텐데. 학교에 들어가서도 저러면 어쩌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상담센터라도 끌고 갔을 텐데 엄마에게 그냥 그러려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나 생각하셨단다. 그게 정답이었고.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내가 국민학교 2학년 생일 때 나는 갑자기 초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다)에 입학하자마자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선생님의 말씀을 절대 진리로 알고 개근상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당사자인 나도 모르겠다. 다만 세상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괜찮아지는 일들도 많다는 거다. 심각했던 일들이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희미해지는 일도 다반사라는 것이다. 물론 내 일곱 번째 생일이 별로였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일곱 살짜리도 알 거 다 안다는 점도 잊지 않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최초의 낯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