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주사가 무서웠다. 어느 정도 커서는 주사가 싫었다. 아파서 싫고 무서워서 싫었다. 그렇게 30여 년 가까이 주사를 증오하니 나름대로 도가 텄다. 주사를 최대한 안 아프게 맞는 비법이랄까. 이번 백신 주사 맞을 때도 꽤 효과가 있었다.
건강 관련 책에서 읽었는데 주삿바늘을 외면하는 것보다 바라보고 있는 것이 고통을 더 적게 느끼는 방법이란다. 하지만 시도조차 못해보겠다. 한 번이라도 시도를 해봐야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 끔찍한 광경을 어찌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말인가.
이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을 바로 '귀찮아하기'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파하는 것도 귀찮다고 최면을 거는 것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주사를 맞는다면 더 효과적이다. '만사가 귀찮다' '아픈지 안 아픈지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귀찮다. 귀찮다. 다 귀찮다. 그냥 자고 싶다' 세뇌를 하는 거다. 덕질하는 연예인을 떠올리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무감각하게 주사를 맞고 나니 덜컥 겁이 난다. 정말 모든 게 다 귀찮아지면 어쩌지? 아픔을 느끼는 것도, 무언가 시작하는 것도, 그리고 누군가 사랑하는 것도. 확실히 예전보다 귀찮음에 대한 역치가 낮아졌다. 대부분이 귀찮고 쉽게 귀찮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방법이 엉덩이 주사에는 효과가 없다는 거다. 귀찮아 하기에 엉덩이 주사는 너무 아프다.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