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귀여운 아기로만 보이던 아이들이 하나의 완벽한 인격체로 느껴지는 순간.
아이가 세 살 때쯤이었나. 아직 말은 서툴고 고집은 세진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다가 폭발해 연필꽂이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색연필들을 보며 번쩍 정신이 들었고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죄책감을 씻어내려 다른 날보다 더 유난을 떨며 잘해줬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그 일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며칠 후, 아이가 그 연필꽂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가 던졌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지 몰랐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해주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기억한다.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 무뎌진 어른들보다 오히려 더 생생하게 즐기고 처절하게 아파할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이는 온 세상이 아팠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