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이다. 빈 곳간이 채워졌으니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것 중 몇 개를 사야겠다. 골라둔 2022년 달력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을 살 것이다. 월급날 이 정도 플렉스는 할 수 있는 거지. 12달 동안 귀여운 달력을 보며 느낄 행복과 계산해보면 현명한 소비다.
빼곡했던 새해 계획에 비해 너무 초라했던 2021년 달력. 가족 생일로 채워진 몇몇 칸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다. 2022년은 어떨까? 마음은 우주 탐험이라도 떠날 기세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아니, 내 마음가짐이 문제일지도.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데 난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까. 뭐가 그리 귀찮고, 뭐가 그리 무섭고, 무슨 핑계가 이리도 많을까.
오래전 카파도키아 여행에서 눈앞에 열기구를 두고 차마 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형형색색의 열기구 사진에 마음을 빼앗겼다. 검색해보니 그곳은 터키의 카파도키아. 화산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기이한 바위 덩어리들을 열기구를 타고 구경한다. 보통은 해돋이 시간에 맞춰 열기구 투어가 이루어져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화산암과 푸른 하늘 속 열기구가 완벽한 풍경을 완성한다. 저곳에 가봐야겠다!
나는 터키로 떠났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를 찾았다. 나름 거금을 들여 열기구 투어를 예약했다. 이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열기구 투어 전날 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깜깜한 새벽 알람을 맞춰두고, 호텔에서 여행사 차량을 타고 열기구 탑승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열기구를 타지 못했다.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고? 내가 문제였다. 막상 열기구를 타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너무 무서워 몸이 덜덜 떨렸다. 카파도키아까지 온 용기와 그간의 기대, 먼저 지불한 값비싼 비용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열기구 위로는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한참 시간을 끌다가 결국 나를 남겨둔 채 열기구는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나는 바닥에 앉아 한참 동안 높이높이 떠오르는 열기구를 바라봤다.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열기구를 탔다면 어땠을까? 막상 타고나면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경에 무서움도 날려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혹시 너무 무서워 열기구 속에서 내내 웅크리가 있었다 해도 지금처럼 아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먼 거리를 다시 갈 수 있을까?
놓쳐버린 기회들은 언제나 무거운 바위처럼 내 마음 한편을 짓누른다. 그때 한번 도전해봤더라면, 조금 더 버텨봤더라면. 차선으로 선택한 일들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가보지 못한 길은 언제나 후회로 남는다. 2022년에는 다시 되돌아오더라도 가보고 싶은 길을 가자. 가서 후회하더라도 올해는 한번 가보기로 하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