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혼자 외출했다. 친구 결혼식 참석이니까 충분히 공적인 일이다. (그러니 독박 육아 중인 남편에게 조그만 미안해하겠다.) 얼마 만에 서울이냐. 일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종로는 여전히 북적였다. 키즈카페도 아니고, 문화센터도 아니고 이런 번화가라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가는 사이사이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길을 헤매며 사적인 자유를 만끽해본다. 내가 이러려고 일찍 길을 나섰지.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게 곳곳에 세일 문구가 붙어있다. 굳이 옷을 사러 돌아다니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나가다 우연히 본 쇼윈도에 걸린 옷이 딱 내가 찾던 그것이면 이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꽃무늬 원피스다. 이런 상콤한 꽃무늬라니. 칙칙한 겨울룩에 단숨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겠다. 주황, 핫핑크 플라워 패턴을 중화시켜주는 블랙까지. 완벽한 조합이다. 분명 나는 쇼핑하러 들어온 게 아니라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고 운명은 거스를 수 없으니 완벽한 꽃무늬 원피스를 가지고 계산대에 선다. 세상에 전제품 10%까지. 오늘 운수가 좋다.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밝고 따뜻한 조명. 향기로운 꽃장식. 환하게 웃는 신랑과 신부. 그들 앞에 펼쳐진 희망찬 시작. 모든 것이 반짝거린다. 이 순간을 둘러싼 모든 것이 동화 속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는 금세 지고 바람은 더 차가워졌다. 동화 속에서 현실로 돌아가는 길이 왠지 씁쓸했다. 그래도 괜찮아. 내게는 완벽한 꽃무늬 원피스가 있으니까. 가방 속을 더듬어 원피스 귀퉁이를 매만진다.
집에 오마 자마 저녁을 준비하며 널브러진 장난감들을 정리한다. 늘 그랬던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집이 오늘 낮 풍경과 대조되며 유난히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괜찮아. 오늘 꼭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샀으니까.
정신없는 저녁이 지나고 고요한 밤이다. 쌔끈 쌔근 자는 아이를 등 뒤로 깜깜한 방을 나온다. 낮에 산 완벽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어볼 참이다. 가방을 뒤져 꺼낸 건 낯선 원피스. 내가 산 원피스가 정말 이거였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몸을 욱여넣었다. 거울에 비친 건 지친 얼굴과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 낮에 내가 보았던 원피스는 정녕 환영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