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라면과 족발

by pahadi

내 소울푸드는 단연코 커피와 케이크지만 특별한 때 자꾸 찾게 되는 음식들이 있다.


세상에 분노가 치미는 날이면 생라면을 먹는다. 예의 없는 인간들에게 차마 건네지 못한 용암 같은 대사들과 사사건건 나에게 태클을 거는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울분을 담아 생라면을 사정없이 부순다. 거칠게 수프 봉지를 뜯어 생라면에 쏟아붓고 한입 가득 딱딱한 생라면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다. 생라면 먹다가 목이 메일 땐 콜라가 제격. 이때만큼은 사이다보다 콜라다.


생라면을 씹어먹으면서 여러 고비를 넘겼다. 600만 원 사기당했을 때도 생라면을 먹었고, 잘못 없이 죄인이 된 날도 생라면을 먹었다. 생라면 덕에 내가 똑같이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은 건 확실하다.


세상에 탈탈 털려 기진맥진해진 날엔 족발을 먹는다. 까마득한 과거가 된 수능날에 족발을 먹었고 마음 졸이며 코로나 검사를 받고 기다리던 날에도 족발을 먹었다.


단백질과 지방에 막국수로 탄수화물을, 무생채와 상추쌈으로 비타민과 무기질까지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족발은 나에게 완전식품이다.(그러니 꼭 족발 세트로 시켜야 한다.) 족발을 먹으며 0%로 방전된 나를 급속 충전한다. 배가 든든해지면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앞으로 몇 번이나 생라면과 족발을 먹게 될까. 생라면과 족발을 먹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먹고 싶다. 맨날 못살겠다 하면서도 오래 살고 싶은가 보다. 생라면과 족발을 먹으며 인생 내공을 쌓다 보면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닌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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