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아직 괜찮다고, 세상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책 속에서라도 확인받고 싶다. 책 속에 정제된 문장들은 세상 풍파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진실들을 탈탈 털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준다.
인류애가 바사삭 부서진 날.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찾아 책을 꺼내 들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 책의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 진화의 가장 큰 요인을 다정함에서 찾는다. 친화력이 있고 서로에게 다정했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분노와 혐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도 친화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소속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집단에 폭력성을 드러낸다. 다정함에서 출발한 폭력성이라면 해결책이 있다.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로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관계는 우리의 폭력성을 줄이고 다정함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하고 착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믿고 싶어졌다.
주변에 확진자가 생겨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추운 날씨에 고생하며 검사를 해주는 사람이나 건물을 뱅뱅 돌아 검사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누구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몇 명은 휴대전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모두들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던 그때 앞에서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엄마도 간절하게 아이를 달래 보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시간만 질질 끌고 있었다.
검사 부스에서 검사를 해주시는 분이 문을 탁 열고 나왔다. 그리고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치고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너만 특별히 안 아프게 해 줄게. 진짜야! 조금만 용기를 내봐." 그 말을 들은 아이가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면 저 조금만 울어도 돼요?" "그럼. 그럼"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눈물을 꾹 참고 있었을까. 울어도 되냐는 아이의 질문 앞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 내 콧구멍은 쑤시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마음과 달리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지만 아이는 용기를 냈다. 눈물과 울음소리는 참을 수 없었지만 꼭 잡은 따뜻한 손 덕에 아이는 무사히 검사를 마쳤다. 몇몇 분이 박수를 쳤다. "아가야. 고생했어." "잘했어. 정말 잘했다" 아이의 눈물 자국 위로 자랑스러움이 스몄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뿌듯한 표정을 지우며 그 작은 발로 깡총 의자를 내려와 검사소를 빠져나갔다. 아이의 등 뒤로 사랑스러운 눈길이 겹쳐졌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따뜻한 날이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웃고 있었다. 분명 우리는 다정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