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조카가 초등학생이 된다. 벌써 이렇게 컸다니!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니 내가 다 뭉클하다. 아기띠에 대롱대롱 매달려 다니던 게 생생한데 걷고 뛰고 곧 날아다닐지도 모르겠다. 조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 나도 운전면허를 땄다. '네가 잘 걸을 때쯤이면 운전을 잘하겠지.' 생각했는데 사는 게 계산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조카가 제 손으로 양말과 신발을 신고, 뛰어나갈 때까지 운전면허는 장롱 속에 꽁꽁 숨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조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운전대를 잡았다. 조카가 저렇게 자라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도 조카 나이 때는 몸집을 두배로 불리고도 남을 만큼 컸을 테니 어느 정도 퉁칠 수 있지 않을까?
내 품에 안겨 꼼지락 거리던 아들이 이제 나에게 잔소리를 건넨다. 아직 ㄹ발음이 서툴기는 하지만 하는 말은 꼭 어른 같다. 아이들을 자란다. 쑥쑥 자란다. 몰라보게 자란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작년과 올해를 비교해보면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나는 무얼 했나 되돌아보니 얼굴에 주름살이 조금 늘었고, 건강은 다소 안 좋아졌으며 모두 다 한다는데 나만 빠질 수 있나 싶어 시작한 주식으로 돈을 좀 잃었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해봤자 역시나 별 거 없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시작한 글쓰기와 그림도 지지부진하다. 헤매고 헤맨 끝에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냈지만 실력도, 성과도 만족스럽지 않다. 방향을 정했으니 열심히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했다. 한걸음 걷고 열 걸음의 성과가 나기를 바랐다. 너무 쉽게 좌절하고, 안될 거라고 단정 지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고 그 시간들을 후회하느라 새로운 시간을 허비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는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다. 다시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금세 다시 일어난다. 고민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발걸음을 뗀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청나게 성장한다. 당신도, 나도 그렇게 걷고 말하고 자랐다. 그러니 우리도 다시 그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