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지만 왠지 더 정이 가는 꽃이 있다. 길가에서, 들판에서, 흙이 있는 곳이라며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이 작고 노란 꽃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모든 인연의 시작이 그렇듯이 자주 보니 정이 들었고 정이 드니 안 보면 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굳이 이름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애기똥풀이라는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애기똥풀이었구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가장 특별한 꽃이 되었다.
애기똥풀은 꽃도 동글동글, 잎도 동글동글하다. 그 귀여운 모습이 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애기똥은 어쩐지 귀여운 면도 있을 것 같아 어느 정도 타협 가능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줄기를 끊으면 나오는 노란 액체가 애기똥과 비슷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노란색 꽃에는 둥근 4개의 꽃잎이 앙증맞게 달려있다. 꽃 크기는 작아도 초록색 풀잎과 대비되는 선명한 노란색 덕분에 쉽게 눈에 띈다. 꽃 아래 줄기를 따라 동글동글한 잎이 비스듬히 어긋나 자란다. 쑥과 비슷한 모양인데 잎사귀 가장자리가 둥글어 훨씬 천진난만한 느낌이다. 그 모습이 꼭 들판 위에 뭉게뭉게 핀 초록 구름 같아서 가끔은 앙증맞은 노란 꽃이 깜찍한 노란 요정이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취미로 생태 세밀화를 그리던 시절에 애기똥풀을 자주 그렸다. 동글동글한 모양새를 흰 종이에 옮기다 보면 나도 조금은 순순하고 동글동글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사각사각 연필로 얇은 선을 따라가다 형태가 완성되면 작은 종이꽃 위에 노란색을 입혀줄 차례다. 이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노란색을 좋아해서 애기똥풀이 좋았는지, 애기똥풀을 좋아해서 노란색이 좋았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노란색을 좋아하는데 애기똥풀의 영향이 큰 것은 확실하다.
아이와 함께 걷는 길에서도 애기똥풀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이 꽃 이름이 뭔 줄 알아? 애기똥풀이야.”
무엇이든 다 아는 척척박사 엄마 역할도 한 번 해주고 줄기를 똑 꺾어, 노란 진액으로 아이 손등에 하트 모양을 그려주며 ‘사랑해’라고 속삭이면 노란 웃음 쏟아지는 완벽한 산책길이 되곤 했다.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작은 꽃 위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겹쳐지고 그 위로 우리가 함께한 추억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리고 시 하나가 더 얹어진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안도현의 ‘애기똥풀’ (그리운 여우) -
작은 노란 꽃 사이로 커다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내가 놓쳐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사소하다고, 흔하다고,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던 날들을 생각한다. 평범하고, 작고 여린 것들에 담긴 값진 이야기를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 척, 부산 떨던 밤이 부끄러워진다. 더 이상은 놓치지 말아야지. 자세히 들여다봐야지. 구석구석 사랑해야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생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