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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 사랑받는 일

by pahadi








“엄마, 혹시 화났어요?”


언제부턴가 아이가 나의 눈치를 살핀다. 엄마의 기분을 헤아리는 불안한 눈빛을 보니 아차 싶다.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느라, 둘째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 두 명을 돌보느라 지치고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시시때때로 포효하는 맹수가 되었고 겁에 질린 아이들은 순한 양이 되었다. 그 모습이 마냥 좋았던 건 아니다. 고요한 밤이 찾아오면 하루를 더듬으며 후회가 눈물처럼 차올랐다. 간장 종지 같은, 내가 분수에 맞지도 않는 엄마가 되어 모두에게 상처만 주는 것 같았다.


형을 따라 ”엄마 화나쪄요? “ 묻는 둘째 아이의 말에 다시 한번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엄마인지 뒤돌아보게 된다. 마음이 서걱거린다. 할 일이 많아서, 말을 안 들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핑계는 차고 넘쳤지만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너무 불공평한 싸움이다.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절대강자 엄마 앞에서 아이들은 한없이 작았고, 흔들렸고, 움츠러들었다. 이 싸움의 시작은 늘 나였고 승자도 늘 나였지만 누구 하나 유쾌하지 않았다. 이 비겁한 싸움을 왜 끝내지 못하는 걸까.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러는 걸까.


어린 시절부터 오늘까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내 마음의 상흔들을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건 나였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우리 집이 때론 아이들에게 무시무시한 정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마다 계절에 맞춰 옷을 사고, 부지런히 식단을 짜고, 좋다는 문제집을 준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을 잊고 있었다. 완벽한 엄마를 꿈꾸느라 엄마의 기본을 잊고 있었다. 내가 해주고 싶은 것들만 생각하다가 정작 아이들을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만을 바라보는 그 간절한 눈빛에 지그시 눈을 맞추자 아이가 한껏 웃었다. 버겁다고만 생각했던 엄마의 자리가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커다란 사랑을 받는 자리였다는 걸 그 눈빛 하나로, 그 미소 하나로 온전히 깨달았다.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이 주는 넘치는 사랑을 즐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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