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와 달랐다. 예민하지 않았고, 소심하지 않았고, 감정 기복도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나의 가장 싫어하는 조각을 아이가 물려받지 않아서. 내가 너무 잘 아는 어려움을 아이는 겪지 않아도 되어서.
하지만 역시나 내 아이였다. 자랄수록 점점 선명해졌다. 아이는 예민했고, 소심했고, 눈물도 많았다. 친구의 작은 말에 속상해할 때, 사사건건 의미를 부여하며 안절부절못할 때, 밤새 베갯잇을 눈물로 적실 때마다 속이 타들어갔다. 내가 걸었던 그 길을 아이도 걷고 있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겠지. 애써 담담하려고 해 봐도 그래지지가 않았다. 자꾸만 아이에게 ‘내’가 겹쳐 보였다. 소심하고 외로운 울보가. 아이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최악을 머릿속에 썼다 지우며 지옥을 만들었다.
아빠 피가 조금이라도 섞였을 거야. 남편을 붙잡고 어린 시절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성격이 어땠는지. 친구 관계는 좋았는지. 자주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그런 상처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남편은 쏟아지는 질문들을 하루살이라도 쫓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남자 얘들은 금방 잊어.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니까.”
그래.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금방 잊었으면. 쿨하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활화산처럼 타들어가는 내 마음을 쥐똥만큼도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해 마음에 가시가 자란다.
“아이가 소심하고 자꾸 우는 모습이 나를 닮은 것 같아서 속상해서 그래. 자라는 동안, 커서도 많이 힘들었거든. 우리 아이가 그걸 똑같이 겪을까 봐 걱정된단 말이야.”
불쑥 들이미는 진지함에 남편이 그제야 제대로 쳐다본다.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그래도 점점 좋아질 거야. 당신도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아? 신혼 때 맨날 울고 삐치고. 아~ 그때 진짜 힘들었다. 하하”
“음... 나 많이 좋아졌어?”
“그럼! 마음이 얼마나 넓어졌는데... 크크크”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요새 덜 속상하고, 덜 삐치고, 덜 우는 것 같다. 10년 동안 끊임없이 들은 남편의 잔소리 덕분인가.
달콤한 말로 치장하지는 못해도 항상 믿음직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맹목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아이들. 그 믿음과 사랑이 스미고 스며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단한 마음에는 오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오해를 야금야금 먹고 자라 서운함이 싹 틀 일이 줄어든다.
예민하고 소심한 울보, 우리 아이의 마음에도 믿음과 사랑을 듬뿍 주어야지. 우리 사이에 사랑이 있다는 믿음.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사랑과 믿음이 아이의 마음도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관계가 믿음과 사랑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단한 마음이라면 굳세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상처받아도 다시 손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약한 부분을 끌어안고 사는 거지. 예민하고 소심하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쉽게 상처받기 때문에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뒤집어 생각하면 약점이 강점이 된다. 너무 싫어하진 말자. 나의 한 조각을.
그래도 마법의 주문처럼 잔소리하는 건 잊지 말아야지.
“마음 넓게 쓰자. 너어어얿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