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란다

by pahadi


아이가 유치원에서 캐온 고구마를 잊고 있었더니 싹이 나버렸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고구마를 차마 먹어치울 순 없었다.


"얘들아, 우리 이 고구마 키워볼까?"


비닐봉지 대신 아이들이 가장 아끼는 컵이 고구마의 집이 되었다. 새 친구에게 얼굴을 그려주고 '고구마다'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친구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일과가 되었다.


"엄마, 더는 싹이 안 틀건가봐요."

부지런히 들여다 봐도 '고구마다'는 묵묵부답이었다.


기다림이 실망으로 변해갈 무렵, '고구마다'에 새 싹이 돋았다. 컵에 물을 갈아주려고 보니 하얗고 가느다란 뿌리도 몇가닥 생겼다.


기운을 차린건지 '고구마다'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루돌프 사슴의 뿔처럼 양쪽으로 싹이 났던 '고구마다'는 아이의 표현을 빌리면 나무처럼 무성한 잎파리를 갖게 되었다.


멈추어 있는 것만 같았는데 '고구마다'는 자기 속도에 맞춰,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고구마다'처럼, 매일 같은 모습인 것 같은 아이들도 돌아보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아이들도, '고구마다'도 모두 나름대로 자라고 있다. 제자리 걸음인 것만 같은 나도 분명 자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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