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하지 마

by pahadi


글과 그림의 소재를 찾아 헤매는 나는 이야기 사냥꾼이다. 능숙하기보다 늘 잰걸음으로 마음만 급한 만년 초보 사냥꾼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바보 사냥꾼이다.


의욕만 앞서 늘 무엇을 쓰고 그려볼까 고민하지만 내 계획대로 이루어진 적은 별로 없다. 좋은 이야기는 야생동물처럼 늘 갑자기 찾아와 빠르게 도망친다. 우연에 기댄 이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바로 메모.


보통은 휴대전화의 메모 기능을 이용한다. 가끔 이 멋진 아이디어를 잊어버릴 리 없다며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게으름)로 메모를 건너뛸 때가 있다. 그 결과는 언제나 후회로 이어진다. 급류에 휩쓸린 듯 유형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생각날 듯 말듯한 찝찝함이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힌다. 그러리 차라리 짧게라도 메모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다.


이렇게 나 자신(의 게으름)과 싸워 이겨 남겨둔 메모는 최대한 신속하게 글이나 그림으로 풀어내야 한다. 묵혀두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부족한 점만 눈에 띈다. 이 이야기는 재미없다, 쓸만하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논리가 부족해, 공감이 안 가는 걸, 너무 비약적이야, 이런 걸 왜 좋은 아이디어라고 적어놨지? 세상의 잣대를 대다 보면 내것은 언제나 형편없어 보인다. 너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잘하고 싶고 잘하려다 보면 시작할 용기가 안 난다.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이 가장 맛있듯이 이제 막 튀어나온 신선한 생각이 가장 좋아 보인다. 그럴 때 냅다 써버려 한다. 이것저것 재다보면 아무것도 못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까만 잉크가 묻은 쓰레기라도 만드는 게 낫다. 그러려면 좋은 아이디어라는 콩깍지가 씌었을 때 얼른 움직여야 한다.


이건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이야기다. 그렇게 버려진 이야기가 몇이더라. 뭐라도 끄적이고 나면 가끔 좋아 보이는 이야기도 쓸 수 있다. 좋고 나쁘고는 나중일이다. 뭐라도 있어야 좋다 나쁘다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대한민국 인구가 몇인데 그 중 나와 비슷한 취향 가진 사람이 한 두 명쯤은 있을 거다. 연필심에 조각하는 사람부터 나무젓가락으로 건물 짓는 사람까지 넓고 넓은 기호와 취향의 바다를 믿어보자.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곰곰이 생각만 하지 않고. 때로는 너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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