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대신 집에 체크인합니다 - 해리어트 쾰러
여행 대신 집
호텔 대신 집에 체크인합니다 / 해리어트 쾰러
밤 9시. 내 방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오른쪽에는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주황 옷을 입은 미피가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벽에는 두장의 엽서가 붙어있다. 모두 전시회에서 구입한 엽서다. 한장은 장 자크 상페의 그림, 한장은 박노해 시인의 시. 왼쪽에는 플라멩코를 추는 댄서와 돈키호테 피규어가 놓여있다. 스페인 여행 때 애지중지 모셔왔다. 지금은 한쪽 팔을 잃은 플라멩코 댄서와 부러진 창을 든 돈키호테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충분한 추억과 영감을 주는 것들이다.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내 책상도 꽤 특별해 보인다.
이 책은 평범하게 지나쳐온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여행 대신 집에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
외딴 휴가지에서 직장 일에 대해 걱정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머나먼 호텔의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으면서도 스트레스 때문에 느긋하게 즐기지 못한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함께 보낸 첫 휴가의 고단함으로 인해 그토록 위대하게 여기던 사랑을 견디지 못한 연인이 왜 없겠는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왜 항상 여행만을 갈망할까? 그냥 집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단순히 장소만 바꾼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새로운 장소가 잠시의 기분을 바꿔줄 수는 있지만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이다. 여행지에서의 첫날, 꿈결 같은 설렘이 지나면 어느 순간 당연한 듯 지루함이 찾아온다.
이 현상을 오버 투어리즘이라 한다. 과도한 관광화로 인해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기능이 균형을 잃었음을 묘사한다. 건강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일하고 생활하며 쇼핑을 하고 즐겁게 지낸다. 어떤 가게는 비싸고 어떤 가게는 저렴하며 사회적 주택과 호화로운 상점, 소매점, 카페 등이 섞여 있다. 하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을수록 상가 임대료는 더 많이 오르게 된다. 오랫동안 사업을 해 오던 기업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서 프랜차이즈 매장이 성업한다. 그 결과 도시의 모습이 어디를 가거나 비슷해지며 도시 거주민들은 점차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정통성이 결여된 관광객을 위한 테마파크만이 버티고 서 있다.
여행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그전까지 여행은 쇼핑처럼 일상적인 일이었다. 배낭을 메고, 유럽 여러 도시를 헤매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일이 인생 매뉴얼의 한 페이지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탄소배출,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한 거주민의 피해, 도시의 정체성을 잃고 테마파크화 되어가는 디즈니피케이션 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풀고 재충전하기 위해 굳이 2주 동안 남쪽 나라에서 휴가를 보낼 필요가 있을까? 아파트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서 가끔은 읽고 있던 책이나 잡지를 내려놓은 채 밝은 빛 속에서 눈을 끔뻑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때론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독은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을 말한다. 특히 외국으로 장기간 여행을 다녀오면 어마어마한 짐 정리와 시차까지 우리를 기다린다. 여행 가기 전에는 편할까. 비행기표 예약부터 어디에 묵을까, 어디를 갈까 끊임없는 허들을 넘어야 길고 긴 입국 심사대에 설 수 있다. 과연 여행이 휴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가는 요즘 아주 좋은 합리화다.
오히려 나는 일상 속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어떤 버스를 타고 어느 맛집에서 점심을 먹어야 할지에 지나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완벽한 자유로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모든 장소에 커피를 곁들이고 싶다. 그것도 맛있는 커피를. 새로운 곳에서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구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의 온갖 정보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때보다는 실패할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동네는 완벽한 안전지대다. 곳곳에 내가 인증한 커피 맛집들이 있다. 어떤 불확실성이나 변수 없이 내가 상상한 커피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새 당신은 더는 먼 곳을 그리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그 자체로 충만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짐에는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 호텔에서 제공하는 베개가 아닌 내 몸에 딱 맞는 베개가 놓인 깨끗한 침대, 비가 오건 햇볕이 쨍쨍 내리쬐건 상관없이 필요한 옷이 모두 진열된 옷장,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깨끗한 물, 그리고 잘 열리고 잘 닫히며 열린 하늘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드 메스트르는 우리는 항상 존재하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을 쉽게 무시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공들여 집을 꾸미고 채운다. 고르고 골라 산 가구와 추억이 담긴 인형과 장식품, 내 몸에 딱 맞는 깨끗한 옷과 익숙하고 포근한 향기가 베인 침구, 저소음 시계와 온습도계, 나만을 위한 완벽한 서재. 이 모든 것을 두고 어디로 떠나려 한단 말인가.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