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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Aug 01. 2015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미유키

언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미미여사의, 행복한 탐정 연작 3부.


몇 달이 몇 번을 지날 동안 머리에 글자를 느긋하게 채우고 음미할 여유가 없을 만큼 긴장해 있어서 소설책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근래에 서점에 갔다가 이제 읽어볼까 싶어져서 충동적으로 무겁게 들고 왔었던 책들.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1,2권과 또다른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배경 시리즈 <벚꽃, 다시 벚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었다.


얼마나 무거운가 하면.. 864쪽에 양장이라. 966g 이나 된다. <벚꽃, 다시 벚꽃> 도 632쪽이나 되긴 한데 비교도 안 됨. 들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토요일 오늘 하루에 단숨에 읽어버린 것도 있는..


언제나처럼, 성실하고 설득력 있게 짜임새있는 이야기를 재밌게 읽으려고 했던 것 뿐인데,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문장들이 훅 하고 들어온다. 요즘 사로잡혀있었던 생각의 조각들이 여기에 글자화되어 있다. 아니, 그런 문장들만 발견하게 되는 걸까.


"그때 생각했어. 당신은 얼마나 어른스러운가 하고. 당신은 제대로 된 사회인이고 여러 가지 일을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제대로 살고 있어. 하지만 나는,"

(... 중략 ...)

하지만 - 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뭐 지금이 아니라도 항상 그래왔다. 내가 가지지 못한, 가지고 싶은 바로 그 무형의 것들을 가진 사람의 옆에 있을 때 고개를 드는 나의 조바심. 외면하지 못해서 꺼내어지는 방황.


"하지만 그때마다 생각했어. 이런 게 오래갈 리가 없다고."
좋은 일에는 반드시 끝이 오는 거야. 소노다 에이코 편집장은 그렇게 말했다.


나쁜 일에도 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좋은 일에 끝이 온다는 슬픔이 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1밀리씩이라도 좋으니까 바꿔 갈 거야."
갑자기 아내는 손을 뻗어 두 손바닥으로 내 뺨을 감쌌다.
"미안해."


어리광과 거짓말이라는 주제 의식이 어떻게 끝까지 풀어내질지 궁금했는데, 결말에서 다시 한번 울림을 만들어주네. 어디선가 봤던 후기 대로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지만.


언제나처럼 사회 문제로 인한 상처 받은 사람들의 가슴 씁슬한 사연을 따뜻한 시선을 담아 이야기해주는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물 추리소설. 오랫만에 장편을 실컷 읽었더니 마음껏 즐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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