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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려면 파괴하라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파괴해야 미국이 산다?

by 백석현

지난 금요일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은 극적이었습니다.

오전 서울 장에서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 전부터 하락하며 1,430원까지 내렸고 3시 30분에 1,434.1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2시 종가로 1,461원을 기록했습니다. 연장시간대 환율이 무려 26원 급등한 것이죠.


크게 3가지가 배경입니다. 중국의 보복 조치, 그에 따른 미국 증시의 대폭 하락, 연준 파월 의장의 마이웨이(my-way) 연설이었죠.


미국의 대규모 관세 공격에 대한 중국의 대대적인 보복 조치가 (한국시각) 지난 금요일 저녁 7시 5분 발표됐습니다.

최근에 보복했던 방식과 달라, 인상적이었습니다.

2월 초와 3월 초 보복 조치 당시 중국은 신중했죠. 미국의 공격에 비해 조심스럽게 반격하는 인상이었습니다. 반격한 시점도 미국이 예고한 관세 시행일에 대중(對中) 관세가 발효된 직후까지 기다렸습니다. 이번에도 그 방식을 따랐다면 (미국이 시행일로 예고한) 4월 9일까지 발표를 미뤘겠죠.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강력하게 보복했고 발표도 서둘렀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상호관세로 추가 34%를 부과한 것을 그대로 되갚으며,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34% 관세를 발표했습니다(지난 2월과 3월에 보복할 때는 관세 적용 범위가 농기계, 농산 등 미국 농업에 초점을 맞추며 범위가 제한됐죠).

또,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7개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16개 미국 군수기업에 대한 수출 통제, 미국 방위업체에 대한 반독점 조사 착수, 대만과 거래한 11개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추가, 틱톡의 미국내 사업권 양도 승인 보류 등 보복 수위를 높였습니다.

미국 증시는 개장 전이었지만 선물시장에서 급락했고, 안전자산인 달러화 가치와 미국채 가격은 급등(금리 급락)했습니다.


한국시각 밤 10시 30분 개장한 미국 증시가 하락폭을 키우면서 달러화가 모든 통화 대비 상승했고

그 와중에 우리 시각 자정을 지난 밤 12시 25분에 파월 의장이 연설에 나섰습니다.

그는 관세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면서도,

아직 미국 경제가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기존 시각을 재확인했습니다.

그전까지 급락했던 미국채 금리는 당장 금리 인하를 서두를 생각이 없다는 그의 발언에 금리 낙폭을 크게 줄였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

연장시간대 환율 상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대대적인 보복 조치가 시장을 움츠러들게 했고

미국 증시가 대폭 하락하며 달러화를 다시 밀어올렸죠.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시장에 미친 영향력은 그 생명을 다했다고 봐야 합니다. 더는 변수가 아니죠.


또, 금요일 저녁에는 미국 3월 고용보고서가 발표됐고

신규 고용은 시장 예상 14만개를 크게 넘어 22.8만개 증가했지만

외환시장은 그 의미를 축소해서 고용 지표에 대한 반응을 자제했습니다.

고용은 대표적으로 경기에 후행하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관세 충격이 반영되지 않은 지표이고, 앞으로 나빠질 것이라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에 고용이 호조라고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죠.


관세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위험을 높입니다. 즉, 성장은 둔화(심하면 경기 침체)되고 인플레이션 상승을 초래합니다. 최악이죠.

미국 기업들 입장에서 관세 충격을 1)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수요는 감소해 경기 침체 위험을 키웁니다.

소비자에게 관세 충격을 전가하지 않고 2) 기업이 감당한다면 이익 감소를 감수해야 합니다. 주가에 직격탄이 되죠. 지난 이틀간 미국 주요주가지수가 속절없이 추락한 이유입니다.


이러나저러나 미국이 제 발등 찍는 짓을 왜 버젓이 저지를까요.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1) 트럼프 방식대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한 뒤, (아직은 숨기고 있는) 진정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전술일 수 있죠.

2) '빨리 가려면 파괴하라'는 실리콘 밸리의 모토처럼, 정말 글로벌 무역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난 목,금 이틀간 폭삭 내려앉은 미국 증시의 반응은 2)의 가능성을 상당 부분 의식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1)과 2) 모두 미국의 의도일 듯 합니다. 그렇기에 협상을 통해 관세를 일부 내리는 경우는 있겠지만, 아주 인색할 겁니다. 1)과 2) 중 어디에 무게가 더 실리느냐에 따라 시장 반응에도 온도차가 생기겠죠.


이제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무역합의를 위한 협상 모드로 전환될 수 있고 미국의 감세 정책도 탄력이 붙을 수 있기에

시장이 직선 주로를 달리듯 일방적 움직임보다는 들쭉날쭉한 경로를 예상합니다.

금요일 밤에 확인했듯 당장 미국 고용이나 이번주 예정된 인플레이션 지표에 대한 시장 민감도는 약해진 가운데, 미중간 소통 여부나 미국 상호관세 관련 협상 또는 유예 소식이 전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어쨌거나 한국이 마주한 현실은 냉혹합니다. 인구가 빠르게 줄며 내수 시장이 죽어가고 수출 시장은 미국 주도로 무역 장벽이 훌쩍 높아졌으니 수출 시장도 급속히 위축될 위험이 커졌습니다. 이 와중에 중국이 기술력 우위도 가져갔죠.

아무쪼록 솟아날 구멍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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