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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높아진 출발선. 시간은 원화 편이 아니다

by 백석현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붕괴와 회복은 비대칭적이죠. 원화 가치 회복 가능성을 생각할 때 대입할 수 있는 시각입니다.

새해 원달러 환율은 출발선 자체가 훌쩍 높아졌습니다. 원화 가치를 집어삼킨 정국 혼란과 함께 원화 가치는 무너지듯 흘러내렸습니다(환율 상승). 그나마 숨 돌릴 틈이 생겼습니다. 12월 31일 늦게 최상목 권한 대행이 여권의 저항을 무릅쓰고 헌법재판관 3인 중 2인을 임명함에 따라, 기존 6인 체제하 의결의 법적·절차적 논란을 해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상처 입은 원화의 신뢰성을 회복하기에는 가야 할 길이 아득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 편이 아닙니다. 20년 전 세계화가 절정일 때는 중국과 한국이 상부상조했습니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는 중국의 등에 올라탄 형국이었고 시간은 우리 편이었죠.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세계화가 역행하기 시작하며 한국 경제 앞에 벽이 세워졌습니다. 관세는 곧 무역 장벽이고, 수출 주도형 성장 모델의 한국 경제에 무역 장벽은 위협적입니다. 재개장을 앞둔 트럼프 월드에서 무역 장벽은 훌쩍 높아집니다.


수출 시장이 위축될 수 있는 것도 문제지만, 수출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예전만 못합니다. 중국의 전략적 지원을 업고 중국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조업 강자로 올라서 물량 공세를 펼치면서, 기존에 한국 기업들이 차지했던 시장을 속속 잠식하고 있습니다. 상당수 기업들이 “트럼프보다 중국이 더 무섭다”는 위기감을 토로합니다.


트럼프 1기에는 취임 첫 해(2017년), 원달러 환율이 연초 이후 130원 넘게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수출 환경은 당시와 판이합니다. 당시는 글로벌 제조업이 21세기 들어 가장 좋다는 말이 나온 시기였고, 한국 수출도 호황이었습니다. 코스피도 1년간 21% 넘게 상승했죠. 8년 전 트럼프 취임을 앞둔 새해처럼 환율이 시원하게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환율이 더 오르지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경제 주체들의 보수적 대응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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