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1
아빠, 나는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해. '네가 좋아하는 건 뭐니'하고 물어보면 '편지요'라고 대답할 수 있을만큼. 편지가 좋아서 지갑에는 우표를 꼭 넣어가지고 다녀. 우체통에 얼마간 편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것을 혹시 알아? 우리 집 앞에 있는 빨간 우체통이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는 건 아마 내 덕분이 아닐까. 친한 사람들한테 이따금 380원짜리 우표를 붙여서 손편지를 보내기도 하거든.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편지 보낸 적이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 같아. 학교에서 어버이날에 부모님한테 편지 보내라고 시켰거든. 핑크색 색종이를 주면서 카네이션을 접으라고도 했던 것 같고. 그때 어떤 말을 편지에 썼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부끄러웠던 마음은 생생하게 떠올라. 꽤 어린 나이였는데도 '낯간지럽다'는 게 어떤 건지 몸으로 느낀 모양이야.
그때의 내가 어디 가진 않았을테니, 지금의 나역시 퍽이나 부끄러워. 아빠한테 편지를 쓴다고? 그냥 말로 하면 되지 굳이 편지까지, 싶을지도 모르겠어. 아빠랑 나는 오빠가 인정하는 절친한 사이잖아. 그래도 편지로 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제 아빠는 나에게 말했지. 이제는 돈이 되는 일을 좀 더 해야겠다고. 좋은 일을 하면 저절로 돈이 벌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도 말했던가. 주방으로 걸어가면서 투자를 받을 때는 CEO의 학력을 본다고 말하기도 했잖아. 그 말을 듣고 어제 저녁에는 약간 우울했어. 요즘 내가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을 먼저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야.
나 가끔 학교에 강의하러 나가잖아. 처음에는 학생자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내 삶의 태도를 소개해. 나는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나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세상이 보기에 내가 해왔던 일은 이력이 되지 않는 것들이야. 유수의 대기업이 승인해준 것도 아니고, 내가 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보기에 지금 아빠가 하고 있는 일은 '우리'가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인 것 같아. 시장이 넓지 않아서, 고객이 많지 않아서, 많지 않은 고객들마저도 넉넉한 여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서 아빠가 곱절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는 그 일이 참 가치있고 멋있다고 생각해. 아빠의 일은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선물해주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선물해주는 일이잖아.
그치만 가치있고 좋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밥도, 옷도, 집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하니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생활을 위해선, 생존을 위해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이 해야 하는 게 사실이잖아.
그런데도 나는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조금 더 좋아해보자고 말하고 싶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모든 사람이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안고 살 수 있다면,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하고 반짝이는지 알고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이 조금 더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나 현실성 없이 우리의 건강함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해야 할 돈과 현실의 문제를 아빠가 대신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빠는 내가 그저 피해버리고 싶은 현실을 가려주는 나의 방패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이제 술도 마실 수 있고 담배도 살 수 있는 성인이지만 그런 면에서는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아빠, 나는 언제쯤 아빠같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첫 번째 편지를 마치며 묻고 싶어. 아빠. 아빠는 언제 가장 반짝이는지. 철없고 비현실적이고 생산적이지 못하더라도, 아빠는 언제 가장 어린아이처럼 신나고 행복한지.
2021. 9. 23.
부끄러운 마음으로,
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