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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영 Oct 12. 2021

10월 9일, 아빠에게

프랭크 시나트라와 장기하를 좋아하는 딸이

아빠. 예전에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3월 꼬박 한 달간은 선배들과 약속을 잡아서 밥을 먹곤 했어. 하루는 밥을 다 먹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잠깐 고민하다가 나는 장기하와 프랭크 시나트라를 좋아한다고 답했어. 내가 꼽은 두 가수의 조합이 특이했는지 선배는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다시 되묻더라. "장기하랑 프랭크 시나트라?"


내가 장기하의 노래를 좋아했다는 건 아빠도 알 거야.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내가 한 가수에 꽂히면 줄곧 그의 노래만 들어서 아빠가 장기하 음악 좀 그만 들으면 안 되겠냐고 나한테 말한 적이 있잖아. 그때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지금도 속으로만 담아둔 말이 참을 수 없이 가득 차 버리면 장기하의 노래를 들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것 같거든.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 두 번째 트랙은 어려운 거절을 말하기 전에 내가 꼭 듣는 노래야. 나 거절하기를 진짜 어려워하잖아. 그래도 그 노래를 두 번 듣고 나면 거절 게이지가 조금은 차올라.


프랭크 시나트라를 좋아하게 된 건 모두 아빠 덕분이야. 요즘은 차에서 음악을 들을 때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듣지만, 나 어렸을 땐 '씨디'가 보통이었잖아. 아빠 옛날에 타던 까만 차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들추면 나오는 수납공간에 씨디 케이스가 가지런히 꽂혀있었던 게 기억나. 그중에 올드팝 모아놓은 씨디, 그 왜 엘비스 프레슬리의 'Hound dog'으로 시작하던 음반 말이야. 거기에 프랭크 시나트라 노래가 있었던 것 같아.


2년 전에 미국에 놀러 갔을 때, 같이 동행했던 선생님의 대학 친구의 친구의 고모네 남편분의 집에서 일주일 정도 묵게 됐어. (관계가 복잡한데 짧게 줄이면 '남'이 될 거야. 남남-할 때 그 남.) 선생님이랑 함께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분과 단둘이 남겨지면 나는 동상 비슷한 게 되어버리곤 했어. 영어도 짧은 내가 미국인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자니 진짜 막막했지. 어느 날은 같이 저녁을 먹는데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봤다.


"두유 노우 프랭크 시나트라?" 별로 리액션이 크지 않은 분이었는데 이름을 듣자마자 반색하면서 그 가수를 어떻게 아냐고 하시더라. 내가 가져간 아이패드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과 그 시절 노래들을 찾아 같이 들었어. 노래를 들으면서 프랭크 시나트라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해주셨는데 오분의 일, 아니 조금 더 쳐줘서 삼분의 일 정도 알아들은 것 같아. 그중에 지금 겨우 건진 기억은 낸시 시나트라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이라는 것.


이따금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노래를 만나게 되는데, 'Something Stupid'도 그중 하나야. 옛 팝송이 으레 그렇듯 많은 가수가 다시 불렀지만 그래도 제일은 두 시나트라의 곡이지. 프랭크 시나트라와 낸시 시나트라.


아빠, 언젠가 아빠랑 나도 프랭크와 낸시처럼 듀엣곡을 부를 수 있게 될까? 우선 후보는 아빠와 나의 애청곡을 반반 섞은 것으로 하자.


발성연습을 하며,

2021. 10. 9. 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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