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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영 Mar 12. 2022

안녕하세요! 도움, 도움

길 위에서 쓰는 글 5

- 출발: 우리집
- 도착: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월을 시작하며 새로운 다짐 두 개를 추가하기로 했다. 


하나는 버스에 탈 때마다 기사님께 인사하기. 내가 타는 버스도 그냥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자꾸만 잊는다. 지하철의 경우에는 운전해주시는 분과 아주 멀찍이 떨어져있지만 버스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운전석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버스 카드만 찍고 자리를 찾아 앉을 뿐이다.


내가 만난 어떤 기사님은 승객이 타고 내릴 때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주시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기사님 특유의 말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운전석에서 버스의 중간 문까지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려면 꽤 큰 소리로 외치셔야 했을 것이다. 덕분에 그 기사님을 만날 때면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곤 했다. 두 정류장 전부터 용기를 모아놨다가 “감사합니다”라는 단어에 담아 목소리로 내보내 보았으니까. 


이젠 내가 도착할 그곳까지 빠르게 데려다주시는 이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보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 실천해보고 있는데, 인사를 받아주시는 기사님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다. 앞선 승객들에게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다가 내가 인사하니 뻘쭘한 목례로 답해주신 경우도 있다. 


앞문으로 내릴 때는 이따금 감사하다는 인사도 건네본다. 뒤따라 내리는 모르는 분이 이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는 걸 들을 때면 마치 바통을 넘긴 느낌에 몰래 기쁘기도 하다. 


인사를 하겠다는 다짐은 더이상 내가 만나는 이 사람들을 우리 세상에서 지우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혹은 ‘고맙습니다’라는 한 단어로 그 사람이 그 시간에 그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역할로 인해 그 사람의 고유한 결과 이름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다른 하나는 도움을 잘 요청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너무 많다. 그치만 어떻게 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너무 어렵다.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걸 구체적으로 요청하기도 어렵고. 운전의 경우도 그랬고, 나의 프로젝트도 그러하다. 왜일까. 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려울까. 


1. 도움을 요청받은 상대가 곤란할까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2.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

3. 이 정도면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 


잘 도움받고 다시 잘 도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까지 쓰고 버스에서 내렸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쓰는 글은 길 위에서 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우므로 중단했다가 오늘 다시 쓴다. 이틀만이다.


초콜렛 파이 광고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했는데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있다. 도움 역시도 비슷한 것 같다. 언젠가 <잘 도움 받고 잘 도움 주는> 사람이 되면 그 비법을 전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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