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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그린 Jul 14. 2020

기도의 의미

마음경영 시리즈 5


내 나이 네다섯 살 때였던 것 같다. 어머니를 따라 여러 절을 다녔는데, 가는 길목마다 시루떡이며 과일들이 바위틈 사이에 가득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과일들을 손에 쥐려고 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제지시켰다. 다른 사람이 놓은 음식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했다. 바로 고사나 제의를 지내고 고수레를 한 음식들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가정의 평안과 안전을 빌며 소원 성취를 위한 제의는 어린  눈에  독특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절에서 제의를 했는지 그냥 기도를 했는지는  기억이 아진 않지만 제물로 떡과 과일을 바위틈에 바쳤다. 당시 어린 나로서는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위에 올려놓은 음식들은 누군가의 염원과 소원을 비는 것이라 전혀 건들지 않았다.


민간신앙인 고사나 제의는 모두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선조들에게, 그리고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식이다. 이는 종교를 떠나 개인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안정시키기 위한 의식이다. 난 특별히 종교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민간신앙이나 특별한 신을 믿지도 않는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의 믿음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호기심에 잠시 기웃거렸던 기독교, 천주교, 불교는 그 자체로 아주 의미 있는 신성한 활동으로 다가왔다.


종교 또한 자신의 믿음의 문제였다.  스스로 어떤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보편적인 신에게 진실된 기도를 올리면  마음이  단단해 짐을 느낀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천주교에서 십자 성호를 긋고, 절에 가서 삼배를 하고 예를 다하는 것이 나는 결코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다. 유명한 교회나 천주교, 절에 가서 그에 맞는 예를 표한다. 그리곤 내가 원하는 기도를 하고 돌아온다.


신이 있다고 믿으면 분명 신이 존재한다. 또한 반대로 신이 없다고 하면 그것 또한 그럴 것이다. 이는 종교적인 신이 아니라 나 자신의 믿음에 대한 신이다. 수 천년 내려온 각각의 종교의 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이 깊어서 그랬을까? 나는 미학을 배웠다. 철학자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생각과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 깊은 공감과 존경과 감동을 한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자연과 세계, 인간의 삶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발견하고, 규정하고, 깨우친 수많은 철학자들의 철학이 좋았다.


특히 세계를 예술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창조를 하는 진정한 철학자인 예술가와 예술작품들을 바라보는 철학자들미학적 입장이 흥미로웠다.  철학을 통해 어릴  내가 관심을 가졌던 각각의 종교가 가진 의미들을 나름대로 이해할  있었고,  스스로 규정할  있었다.


 모름에 대한 두려움 마음을  모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미래에  살아갈  있는지! 무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믿음을 만든다. 

그런데  믿음은 무지의 두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깨달은 존재에 대한 존경이 담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바로 나 자신의 믿음을 만든다. 모든 믿음은 스스로에게 향한다. 고수레 음식을 정성껏 올리고 치성을 다했던 개개인의 믿음은, 그것을 바라본 어린아이의 눈엔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한 어른들의 간절한 노력으로 보였다.(실제로 새벽부터 산행을 해야 했던 어린 나도 엄청난 노력을 한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삶을, 또 때론 가족의 삶이 자신의 믿음대로 바르게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의 간절한 기도이다.

그렇기에 모든 기도는 의미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한, 우리 자신들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기준, 삶의 철학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오늘, 조용히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글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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