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연 Oct 15. 2021

차학경: 다시 쓰는 죽음, 온전한 작업으로 말하기

『마이너 필링스』


미술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면서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이란 이름은 그가 남긴 작품뿐 아니라 그를 오마주 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작가들의 몸으로 발화되어 만날 수 있었다.


지난 3월에는 한국계 미국인 시인인 캐시 박 홍(Kathy Park Hong)이 쓴 자전적 에세이, 『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2020)에서 차학경을 다시 만났다. 장기화되는 코로나로 동양인 혐오 범죄가 급증하면서,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나왔던 이 책은 새로이 뉴욕타임스에 소개되고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가며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올해 여름 번역되어 『마이너 필링스』로 출간됐다.)


문 밖에서 벌어지는 동양인 혐오 범죄 사건은 매일같이 여러 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되었다. 동양인을 향한 미움을 넘어선 혐오의 감정이 폭력으로 들끓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바이러스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화로 하얀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이해하고자 역사서와 인문서로 매일을 도피했지만, 공벌레처럼 움츠러들기만 할 뿐 아무것도 와닿는 건 없었다. 그러다 집어 든 책이, 『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이었다. 사실, 시앤 응가이(Sianne Ngai)의 『Ugly Feelings』(2005)가 떠올라 쉬이 접근하기 어려웠지만(너무 힘들게 읽었기 때문이다.), 차학경을 다루는 챕터가 있다는 리뷰에 주저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여 가며, 때로는 의심과 질문이 난무한 채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책장을 마저 다 넘기지 못한 채 표지를 덮었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학경(좌), "Dictee" Promotional Flyer(우) ©UC Berkeley,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


차학경은 부산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어린 시절을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며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UC 버클리 대학교에서 비교문학(comparative literature)과 미술을, 파리에서는 구조주의 언어학(Structural linguistics)과 프랑스 영화 이론을 공부했다. 작품 전반에 깔린 정체성, 이주, 망명, 기억, 소외감 등의 주제는 모국어(한글)와 정착지(영어, 불어)의 ‘언어’를 분석한 시각 예술과 결합해 개념미술과 필름,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의 매체로 남겨졌고, 미술계뿐 아니라 문학계, 영화계까지 전 세계적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여기서, 캐시 박 홍이 의문을 던지는, 차학경의 죽음을 언급한 이력을 구글과 네이버에서 찾아 옮겨본다.


“1982 년 뉴욕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비운의 천재 예술가는.. "

“집 근처의 주차장에서 괴한에게 피살되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쓰인 부분은 대개 외면 시 되거나 잘못된 정보로 넘쳐났다. 사실 차학경의 참혹한 죽음을 발설하는 것은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으로 여겨져 오랜 시간 금기시되어오기도 했다. 나 또한 문학수업에서 처음 접한 그의 기념비적 작품, 『딕테』(DICTEE, 1982)를 마주하며, 그가 뉴욕에서 살해당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어떻게 피살되었는지 질문하지 못했고, 회피했다. 캐시 박 홍은 나의 이런 못난 감정을 아프게 꼬집고 있다.  


“But where does the silence that neglects her end, and where does the silence that respects her begin? The problem with silence is that it can’t speak up and say why it’s silent. And so silence collects, becomes amplified, takes on a life outside our intentions, in that silence can get misread as indifference, or avoidance, or even shame, and eventually this silence passes over into forgetting.” ― Cathy Park Hong, 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
“그녀를 멸시하는 침묵은 어디에서 끝나고, 존중하는 침묵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거죠? 침묵의 문제점은 침묵하는 이유를 목청 높여 말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침묵은 쌓이고, 증폭되고,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체의 생명을 얻어 무관심이나, 회피, 심지어 수치심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으며 결국 이 침묵은 망각으로 이어집니다.”  


"The Dream of the Audience", 2004, Installation view  © Generali Foundation


1980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차학경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간다. 1982년 5월에는 UC 버클리에서 만난 사진작가, 리차드 반스(Richard Barnes)와 결혼을 하고, 11월에는 『딕테』의 가제본을 막 받아 들고는 부모님에게 책을 부친다. 1982년 11월 5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의 텍스타일 부서에서 파트타임직 일을 마친 차학경은 단체전에 선보일 사진 작업, <미술사 속의 손>(미완으로 남겨졌다.)을 제출하기 위해 비영리 기관인 아티스트 스페이스(Artists Space)에 도착한다. 큐레이터와 짧은 대화를 나눈 후, 퍽 빌딩(Puck Building)의 리모델링 기록 사진을 담당하고 있던 남편을 만나러 갤러리를 나선다. 남편과 단 몇 분 차이로 엇갈린 차학경은 남편의 작업실을 가기 위해 퍽 빌딩의 뒷문으로 들어가고, 그곳의 경비였던 조셉 산자(Joseph Sanza)를 본다.


산자는 차학경을 지하로 끌고 가 강간한 후, 목을 졸라 죽이고, 다른 경비에게 차를 빌려 퍽 빌딩에서 몇 블록 떨어진 주차장에 시신을 유기한다. 경찰이 저녁 7시 즈음 시신을 발견했을 때, 바지와 속옷은 내려가 있었고 시신은 아직 따뜻했었다. 산자가 유죄 판결을 받기까지 3 차례의 재판이 열렸으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재판 기록에는 산자의 얼굴과 팔뚝 이곳저곳에 깊게 긁힌 상처가 명시되어 있다.


<Portrate of an Artist(예술가의 초상)> 장에서는 차학경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날의 상황을 마치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듯 생생히 그리고 있다. 하지만 세밀히 그려질수록, 또 다른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길을 찾아 떠난다. 나는 퍽 빌딩, 리차드 반스, 조셉 산자, 차학경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법정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차학경의 오빠인 존 차(John Cha)가 집필한 그의 죽음에 대한 실화소설, 『안녕, 테레사』(2016)를 연이어 읽어나갔다. 여러 의문문과 가정문이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캐시 박 홍이 차학경의 죽음을 분명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금 끄집어 올린 이유만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차학경의 작업을 온.전.히. 말하기 위해서.. 그의 죽음이 두리뭉실하게 기록되고 화자 된다면, 조각조각 꿰매어진 작업의 틈 사이로 원치 않는 균열이 생길 테니까..  


“속에서 웅얼거린다… 속에는 말의 고통, 말하려는 고통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것이 있다. 더 거대한 것은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이다.” ―차학경


"딕테"의 표제지(좌), <우라니아(Urania) 천문학> 장에 실린 인체의 발성기관 표와 함께 소리, 말,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우)


사망 직후 발간된 『딕테』는 책의 형태를 지닌 자서전적 오브제라고 부르고 싶다. 불어와 영어, 라틴어, 중국어, 한국어가 캡션이 없는 사진과 도표, 인체도, 서예, 친필 편지 등과 함께 배경과 문체를 변주하며 몽타주 형식으로 짜여졌다. 시간과 기억, 언어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가족사와 한국의 근대사를 여성 화자들(유관순, 차학경의 어머니 허형순 여사, 성 테레사, 무성영화 「잔 다르크」의 주인공으로 분한 프랑스 여배우 르네 팔코네티 등)의 목소리를 빌려 낯선 방식으로 쓰였다. "나의 주된 작업은 언어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으로 이주 후 겪어야 했던 '언어'를 둘러싼 상황은,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어려움, 그리고 더 나아가 언어가 갖는 권력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딕테』와 더불어 그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작업, <눈먼 목소리>(Aveugle Voix, 1975)에서는 위아래 모두 흰옷을 입은 차학경이 맨발로 서있다. 이윽고, 그는 두 개의 기다란 흰 천과 말아 놓은 배너 앞에 앉아, VOIX(목소리, 의견, 투표)가 새겨진 흰 천을 집어 들어 눈을 가린다. 그리고, AVEUGLE(눈이 먼)가 새겨진 흰 천으로는 입을 막는다. 두 개의 천이 얼굴을 모두 가리자, 글씨의 가독성이 떨어지면서 'vow'와 'ugly'로 읽히기도 하고, 여성 순교자인 듯 연상되기도 한다. 그가 천천히 일어나 말아놓은 배너를 바닥에 펼쳐 양방향으로 읽히는 단어들을 하나씩 드러낸다.


–WORDS–FAIL–ME–SANS–MOT–SANS–VOIX–AVEUGLE–GESTE–


펼쳐진 배너 위에 쪼그려 앉은 그는 단어들을 향한 의식적 행위를 이어간다.


Theresa Hak Kyung Cha, <Aveugle Voix> (1975), performance, 63 Bluxome Street, San Francisco ©BAMPFA


차학경의 작업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이민과 난민, 여행 등의 인구이동 현상이 크게 늘어나던 1990년대부터다. 아시아 아메리칸 여성학자들은 『딕테』를 다문화주의와 탈식민주의, 여성주의 담론이 교차하는 작품으로 재조명하기 시작하며, 대학의 주요 교재로 널리 사용하기 시작했다. 차학경이 예술가로 8여 년간 활동하며 남긴 50여 점의 작품은 '테레사 학경 차 기념재단'을 설립한 유가족이 보관해 오다가, 1991년 그의 모교인 UC 버클리 대학의 버클리 미술관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BAMPFA,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에 작품 일부를 기증하여 여러 학자들과 학생들이 그의 작품을 보존하고 연구하는데 힘쓰고 있다.


그의 작업은  무의식 속에  맞춰지지 않는 퍼즐이었다. 그렇기에 몸속  구석은 그의 작업으로 끝없는 퍼즐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다. 전시를 만들 때도, 작가들을 만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차학경의 흔적은 종종 우리 사이를 이어 주기도 하고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가 죽은  39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까지도  그의 작업에 대해 그리고 인간 차학경에 대해 이토록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일까. 아직까지도 미처 꺼내지 못한, "말하려는",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이 있기 때문일까.



1982년 6월 25일

오빠, 존에게.

여름이 왔어. 비가 내리고 간간이 햇살이 비쳐. 요즘은 기분이 찜찜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좋은 일들이 있었어. 나는 방금 원고를 막 끝내서 출판사에 넘겼어. 무보수의 노동이었지만.. 원고를 넘기면서 느낀 건, 벌거벗은 기분이었다는 것과 해방됐다는 것 외에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어. 그 원고는 작업 중이거나 아니거나 내 몸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어. 나는 어디에 가든지 항상 그 원고를 들고 다녔고, 자면서도 원고 생각만 했지. 그리고, 결국 완성했어. 그래도 완전하게 구성된 책이라고 여기기는 힘들어. 이제까지 조각조각으로 인식했거든. 나는 이제껏 해왔던 작업들이 완성된 것을 볼 때마다 놀라곤 해. 일과 휴식 사이, 꿈속에서, 그리고 직장에 대한 불만, 무직에 대한 불만, 가난함, 리차드와 언쟁을 벌이는 사이사이에 조각조각 만든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거든. 나는 지금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게 아니야. 그저 좋고 놀라운 뿐이야. 나는 오늘 존경하는 친구에게 원고를 읽어 달라고 부탁했어. 그녀는 나에게 책의 이미지나 책에 대해 최초로 진정한 평가를 해줄 거야. 리차드는 바빠서 책을 못 읽었어. 내가 필요할 때 도와주긴 했지만. 그는 나중에 읽겠지.
여기는 유동성이 없는 도시라고 느껴져. 나는 정말로 이 도시가 거짓되고 조작되고 과장된 어떤 초자연적인 힘으로 번창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 때문에 성공할 기회가 드물어. 가끔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러 있다고 해도 그 밑에는 비도덕적 쓰레기, 돈, 기생충 같은 존재가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이야. 진짜 구역질 나. 그 기회는 과장이나 허황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야. 지금 이 시대에 톨스토이나, 혹은 그보다 나은 누군가가 정말 존재할 수 있을지 난 모르겠어.
내가 또 횡설수설하고 있네. 내 안팎의 생각들을 가지고 말이야. 오빠한테서 소식 없는 거 보니까 오빠는 잘 지내고 평소대로 바쁜 줄 알고 있을게. 막내 버나데트가 유럽에서 돌아오면 오빠는 좋겠지. 우리 가족 모두 모일 때가 좋았어. 그리워. 난 지금 망명자의 상태인 것 같아. 내가 선택했고, 내년에 어디에 있을지 알기 어렵지만, 나는, 아니 리차드와 나는, 뉴욕, 미국 그리고 가능하다면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우리는 이것을 천천히 생각해 볼 거야.
우리는 재미있는 유럽 사람들을 몇몇 만났어. 그들의 교육, 활력, 진지함은 여기처럼 돈에 구애받지 않는 거 같아. 나는 너무 많은 환상을 갖지 않으려고 해. 리차드와 나는 비교적 잘 지내.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는 계속해서 생활고와 과로에 시달리고 있고, 정신적인 고양은 부족해. 나는 규칙적으로 태극권 수련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도장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태극권 수련은 곧 증발되고 말아, 밖에 나서자마자 방어태세를 갖춰야 하거든. 우리는 뉴저지의 케이프 메이와 애틀란틱 시티에 갔어. 바다는 상쾌했어. 서부만큼은 못하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신기했어. 거기서 본 삐딱한 문명, 우울함, 교육 수준은 모두 리차드 같은 저널리스트나 나 같은 아웃사이더에게는 악몽이었어. 억압이 심해지면 깨어나길 바라는 꿈이야.
시간 되면 편지해 줘. 나도 종종 시간이 날 때 편지 쓸게. 내 의사소통 능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10월이나 11월 중에 내가 쓴 책을 받으면 오빠는 내가 뭘 하고 지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다음에 나는 에이전트들을 통해서, 힘이 없지만, 애를 써서 더 많은 프로젝트들을 구해야지. 이번 작업보다는 더 나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 아마도 식사 대접, 원고 복사 등등 포함해서. 몇 가지 불평도 들어주겠지. 언젠가는, 보람이 있을 거야.

사랑하는 테레사가

 ― 존 차, 『안녕, 테레사』






매거진의 이전글 노아 데이비스: 영원히 기억될 페인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