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뉴욕 전시 리뷰는 개인 아카이브를 위해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담긴 단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전시들 중, 기록하고 싶은 작가나 전시에 대해 메모한다.
1. Helena Foster: Time Honoured
@Kasmin 12, April 3 – May 3, 2025
전시장 안 수많은 작품들 중, 왜 이 작업 하나만을 사진으로 남기고 갤러리를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떠올려보려 애써도, 이 작업을 봤다는 사실마저 희미하다. 사진첩을 넘기며 여러 이미지 사이를 손가락 사이로 스치며, 유독 이 사진에만 시선이 오래 머문다. 다시 봐도 좋은, 이 작은 작업은 1988년생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헬라나 포스터가 2024년에 vellum 위에 유화로 그린 것이다. 얇고 유약한 vellum은 오일 페인팅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마운트된 종이 위에 은근한 곡선을 남기고 있었고, 그 미세한 일그러짐조차 이 작업과 어울린다고 느꼈다. 흙빛 팔레트 속 초록 셔츠를 입은 인물, 그리고 흐릿하게 처리된 배경은 설명하기 어려운 몽환을 자아낸다. 포스터는 지역사회, 기억, 예언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고 하는데—앞으로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은 작가다.
2. JULIEN NGUYEN
@Matthew Marks, through June 28, 2025
Foster의 작업이 남긴 조용한 여운과는 전혀 다른 감각. 메튜 막스에서 열린 줄리앙 응우옌(b. 1990)의 신작 페인팅 20점에서 나는 동시대 회화의 감성을 느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의 세계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인 삶의 단면들을 중심에 두면서도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전통 일본 회화 기법에서 가져온 재료와 형식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응우옌만의 시간대를 만들어냈다. 중세 시대부터 사용된 copper 위에 쌓아올린 유화, 엣지 없이 채워진 프레임—모든 요소가 하나의 결정처럼 단단히 응고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소장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 작품은 Waiting for the Barbarians (2025), Self-portrait at 33 (2024), 그리고 Room (2024).
3. Rosemarie Trockel: The Kiss
@Matthew Marks, May 7 — August 1, 2025
이보다 더 쿨한 전시를 최근에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로즈마리 트로켈의 감각적이고 지적이며 치밀한 작업에 가슴이 뛰었다. 글래드스톤과 슈프뤼트 마거스에서 동시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The Kiss와 Material이라는 제목 아래, 신작과 함께 보기 드문 역사적 작품들을 아우른다. 트로켈은 젠더, 물성, 예술사에 대한 오랜 탐구를 다양한 매체로 펼쳐 보이며, 각기 다른 두 공간에서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4. Christine Sun Kim: All Day All Night
WHITNEY, Through Sept 21
최근 뉴욕 곳곳에서 이강승, 양유연, 정금형 등 한국 작가들의 전시를 연이어 마주친다. 같은 시기,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크리스틴 썬 킴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2011년부터의 작업들을 비롯해 드로잉, 영상, 인포그래픽, 벽화 등 다양한 매체가 세 개 층에 걸쳐있다. Ghost(ed) Notes(2024), Prolonged Echo(2023)와 같은 벽화는 음의 기호와 몸짓의 언어 사이에서 생성되는 감각을 전시장의 리듬처럼 흘려보낸다. 언어와 소리, 수신과 응답, 표현과 오해의 간극에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생각해보게 했던 전시..
5. Yu Nishimura: Clearing Unfolds
April 24—June 27, 2025
몇 해 전만해도, 아시아 작가들의 모습이 담긴 구성화를 보기 힘듦에 대해 짧게 글을 남긴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아시아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구상화가 하나둘 갤러리들에서 선보이고 있으며(양유연 작가의 페인팅 또한!), 그 변화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예술계에서의 돈과 권력, 정치의 구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Yu Nishimura의 미국 첫 개인전이 즈워너 업타운에서 열렸다. 누가 봐도 일본인 작가의 손에서 나왔음을 느낄 수 있는 풍경과 인물들—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요코다이 지역의 거리, 애니메, 건축 이미지들이 겹겹이 흐려진 채 격자처럼 얽혀 있었다. 선명하지도 단정하지도 않은 형상들 사이로, 붙잡을 수 없는 기억이 반투명 물감 레이어를 통해 표면에 미끄러지듯 그려져있다.
6. Rashid Johnson: A Poem for Deep Thinkers
April 18, 2025–January 18, 2026
한때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작가다. 시각예술이 감정과 정치, 일상과 철학을 어떻게 오갈 수 있는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은 ‘섹시하다’—그리고 동시에 ‘지적 허영’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오히려 쾌감을 주기도 한다. 이번 구겐하임 회고전에서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영상 작업이 특히 인상 깊었다. 영상조차 너무나도 ‘래시드 존슨답다’고 느껴졌달까. 나선형 구조를 따라 이어지는 설치들은 회화적 질감, 물성, 구조적 긴장을 포괄하며, 그의 일상 속에 깃든 감정과 사유의 복합적 관계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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