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뉴욕 전시 리뷰는 개인 아카이브를 위해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담긴 단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전시들 중, 기록하고 싶은 작가나 전시에 대해 메모한다.
1. The Faraway Nearby (TFN)
@Westbeth Gallery, March 5—23, 2025
기획한 전시를 곱씹어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그럼에도 어수선한 일들에 밀려 정작 리뷰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한 달 여 정도 지나고 나서야 책상에 앉아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본다. The Faraway Nearby (TFN) 프로젝트는 2022년에 시작되었다. 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 더 구체적으로는 작가들 간의 대화 자체가 하나의 미술적 형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트리거는, 팬데믹 기간 동안 급증한 아시아 혐오 범죄를 개인적으로 체감하며 느낀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주변 여성 작가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로 시작되었고, 그렇게 모인 네 쌍의 여성 작가들은 2023년, 5개월간 대화를 나누었다. 이 대화의 기록들은 thefarawaynearby.us 웹사이트에 아카이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모아 2024년 2월, A.I.R. 갤러리에서 전시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한층 확장된 방향을 모색했다. 참여 작가들의 나이(2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까지), 작업 매체 (페인팅, 조각, 사진, 영상, 퍼포먼스, 공예 등), 그리고 '아시아'라는 정체성의 스펙트럼 (일본, 중국, 인도, 한국, 중국계 미국인, trans, and non-binary)을 더욱 폭넓게 고려해 네 쌍의 작가를 구성했다. 이들은 5개월간 1:1 대화를 이어갔고, 여기에 더해 매달 모임을 갖거나, 20명의 응답자들이 작가들의 대화에 응답하는 In Response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했다. 대화의 기록은 물론 프로그램들과 2025년 3월에 열린 전시까지 포함하면, 1년여의 긴 여정을 함께한 셈이다. '다양성과 확장성'을 목표로 삼은 이번 라운드는 전시 장소 또한 프로젝트의 정체성과 맞닿아야 했기 때문에, 많은 리서치와 미팅 끝에 Westbeth를 전시 공간으로 선택했다. 그곳은 TFN이 지향하는 가치와 공동체적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장소였다. 특히, 작가 간의 대화뿐 아니라 커뮤니티의 응답까지 전시의 일부로 풀어낼 수 있었던 점은 개인적으로도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세 번째 라운드는, 동료 기획자가 나를 대신해 프로젝트를 이끌 예정이다. 다른 기획자의 시선으로 운영되는 TFN 또한 의미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고, 작년 여름 윈도갤러리를 오픈하면서 이번 해에는 갤러리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2. TFN Gathering
@Shigeko Kutota Video Art Foundation, March 5—23, 2025
TFN 전시를 위해 작가들은 메사추세츠 주에서, 플로리다 주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뉴욕으로 모였다. 넉넉지 않은 예산 속에서 경비를 지원해주지 못한 상황이 미안했고, 그럼에도 전시를 위해 기꺼이 발걸음을 해준 작가들에게 고마웠다. 어쩌면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한 작가의 소개로 백남준의 동료이자 파트너였던 시게코 쿠보타 비디오 아트 파운데이션과 연결되어 우리는 그 공간을 방문할 수 있었다. 쿠보타의 사적인 흔적들이 남아 있는 장소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과거에도 지금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연구와 기록, 보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3. Lionel Maunz: Obedience
@BUREAU, March 5—23, 2025
보통 폭력성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전시 앞에서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금세 갤러리를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운츠의 조각 앞에서는 한참을 서성였다. 단지 그의 리얼하고 밀도 높은 조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직접 쓴, 강박에 가까운 강렬한 텍스트가 오히려 나를 붙들었다. 이 전시는 "치유나 구원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묻기보다, 그 가능성을 다양한 실패의 사례로 해체해 간다. 오토 뮐, 해리 할로우, 엘리엇 바커 등 실존 인물들이 남긴 공동체 내 폭력, 실험적 치료라는 이름의 학대, 감금된 아이들의 트라우마는 그의 조각 안에서 구체적으로 재현되거나 상징적으로 유영한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맞닥뜨린 불편함과 수치심이 나도 모르게 깊숙한 내면을 흔들고, 질문으로, 메아리로, 계속 따라붙는다. 어쩌면 그 감정의 불청객성 자체가 관객에게 작동하는 방식일까.
3. Tavares Strachan: Starless Midnight
@MARIAN GOODMAN, 7 March—19 April 2025
메리언 굿만 갤러리가 트라이베카로 이전한 후 가장 인상 깊게 본 전시였다. 바하마 출생의 타바레스 스트라칸(Tavares Strachan)은 1층과 2층의 일곱 개 공간에 걸쳐 “Starless Midnight” 전시를 펼쳤다. 역사적으로 소외된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복합적인 서사를 구축해 온 스트라칸은, 1층에서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인용문을 네온과 사운드 작업으로 구현하며 감각적이고 시적인 여정을 유도한다. 1층의 전시는 상징과 조형의 밀도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강한 몰입감을 주었고, 특히 피아노가 벽면을 관통하며 분할된 형태인 설치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경계, 분할, 그리고 연결의 역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제스처로 보였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스트라칸의 오랜 탐구와도 정교하게 연결돼 반면 2층의 텍스트 기반 회화와 사운드 시리즈는 반복적인 형식 탓에 다소 피로감을 안겼다. 전시는 스트라칸이 수년간 진행해 온 연구 프로젝트 “The Encyclopedia of Invisibility” 와 연결되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지식의 경계 너머를 탐색하려는 그의 꾸준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4. Jessica Stoller: split
@P.P.O.W, February 28 – April 5, 2025
P·P·O·W에서 열리는 전시는 가능한 한 챙겨보는 편이다. 두 명의 여성 갤러리스트가 이끄는 P·P·O·W는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들을 꾸준히 소개해온 곳이다. 트라이베카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메인 전시장이 아닌, 그 옆 건물 2층에서는 세라믹 아티스트 제시카 스톨러의 개인전이 있었다. 세라믹은 지난 몇 년 사이 거의 모든 갤러리에서 일 년에 한두 번은 다루는 소재가 되었고, 특히 한국의 달항아리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스톨러는 그런 전통적인 매체를 가지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정체성을 둘러싼 역사적 억압을 전복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바닥을 가득 채운 설치 작업 <Seeing Red>(2024)로, ‘해부학적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밀랍 조각과 프랑스 도예가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의 세라믹 플래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하얀 진주 아래로 깔린 붉은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서류, 이름 모를 식물, 피임 테스트기, 부서진 신체 조각 등이 뒤섞여 있다. 이 요소들은 단순한 장식적 연출을 넘어, 여성의 몸이 끊임없이 통제되고 대상화되어 온 역사적 맥락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5. Jane Rosen: Variegated Stones
@Bienvenu Steinberg & C, March 6 – April 5, 2025
새를 무서워한다. 날갯짓의 급작스러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은 종종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다. 주말 아침, 창밖에서 들려오는 지저귐의 주인을 찾아보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제인 로젠의 전시는 마치 그 새들이 물성으로 태어난 듯한 경험이었다. 유리, 대리석, 석회석으로 빚어진 조각들은 보이지 않는 생명의 존재감을 공간에 스며들게 한다. 모란디를 향한 그녀의 오랜 경외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형태보다 관계에 집중하는 구성과 감각, 침묵이 교차하는 순간들. 이번 전시는 로젠이 오랜 시간 쌓아온 물질성과 자연에 대한 사유가 어떻게 하나의 조형 언어로 귀결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The Ark》(The Church, Sag Harbor)에 함께 출품되는 일부 작품을 통해 그녀의 조각이 동시대 조각 담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엿볼 수 있다.
5. Ross Knight, Continuous Squeeze
@OFF PARADISE, January 17 — May 17, 2025
작업을 보다 보면 작가의 성별과 인종이 작업보다 먼저 다가올 때가 있다. 그 느낌이 싫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렇지 않을 때가 있으며, 또 어떨 때는 불편할 때가 있다. 이 기분의 기저가 어디서부터 오는 건지 나의 내면을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겠지만, 나잇의 작업을 보는 순간, 아ㅡ 이 작업은 백인 남성의 작업이구나.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자마자 보이는 불안정한 형태의 하지만 매력적이기도 한 이쁜 색상의 조각품들. 직설적인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Continuous Squeeze, 지속적 압박감과 긴장 상태를 산업 재료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6. Constellations
@47 CANAL, February 21–March 22, 2025
47 캐널이 공간을 소호로 옮긴 후 방문한 첫 전시였다. 단체전이 조금은 산만하게, 혹은 짜임새 없는 듯 느껴졌지만, 그건 그날의 기분 탓이었을까. 프레스 릴리즈에서는 각각의 작품들이 독립적이면서도 별자리처럼 서로 연결된 하나의 경험을 선사한다고 했으나, 나에게는 그저 각각의 작품으로만 다가왔다. 유난히 눈에 들어온 작업 하나 만을 급히 사진 찍은 후 서둘러 나왔다. 이후에 작업을 찾아보니 시오반 리델 (Siobhan Liddell)이었다니!
리델의 손작업을 좋아했다. 그래서 과거 TFN 뉴스레터에 대표 이미지로 그의 손작업 이미지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손의 스캔 이미지에 원형의 구멍을 뚫어, 그 안에 상징적 이미지를 삽입해 초현실적인 느낌이 났었던 작업이었다. 위의 회화 작업과는 전혀 다른 작업처럼 보이지만, 리델 특유의 섬세하고 시적인 감정이 나를 끌어당겼나 보다. 빛과 그림자, 공간의 틈 등을 통해 존재와 부재, 시간의 흐름을 탐구하는 그의 작업에서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교감을 하게 된다.
7. Léon Spilliaert
@David Zwirner , March 5—April 12, 2025
동시대 작업들만 들여다보다가, 20세기 초반의 작업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다. 이 안정감은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벨기에 아티스트 레옹 스필리에르트(1881-1946)의 1900년대와 1910년대에 주로 제작된 종이 작품들을 즈워너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스필리에르트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구성은 프랑스 작가 오딜론 레동(1840–1916)의 영향을 받은 상징주의적 특성을 띠면서도,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다. 고독하고 신비로운 풍경과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각 장면은 서로 자율적인 듯하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각각의 그림이 마치 같은 꿈속의 장면처럼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8. Joan Jonas: Empty Room
@GLADSTONE, March 1 – April 12, 2025
작년 여름이었다. 조앤 조나스의 회고전이 모마에서 열리면서, 드로잉센터를 비롯해 뉴욕 곳곳의 여러 기관에서 퍼포먼스와 토크 등이 축제처럼 이어졌다. 나는 Animal, Vegetable, Mineral이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에코백을 들고 다니며, 그 무더운 여름을 통째로 조나스와 함께 보냈다. 허드슨강의 매서운 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3월, 나는 다시 그녀의 작업 앞에 섰다. 성품이 묻어나는 질감의 작업 앞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누군가의 숨결을 어루만지는 부드럽고 잡히지 않는 존재를 떠올리면서.
“I didn’t see a difference between a poem, a sculpture, a film, or a dance. A gesture has for me the same weight as a drawing: draw, erase, draw, erase —memory erased.”
—Joan Jonas, In the Shadow of a Shadow
9. Laura Owens
@Matthew Marks, February 14–April 19, 2025
주변의 지인들이 로라 오웬스 전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그녀의 이번 전시에 압도당했다는, 꼭 봐야 하는 전시라고 입을 모았다. 로라 오웬스를 떠올리면 위트니에서 열렸던 전시가 떠오르고, 그 당시에 나는 윤향로 전시를 만들고 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윤향로 작업이 자연스레 함께 떠오른다. 첼시에 위치한 메튜막스의 두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한 오웬스의 개인전은 작가의 상상을 현실화시킨, 그야말로 '오웬스 월드'가 아니었나 싶다. 오웬스는 전통적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고, 장식과 수순미술, 수공예와 디지털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유머와 지적 탐구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여 왔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를 몰입형 환경으로 확장하여 (갤러리 벽면을 두르고 있는 작업들은 150번이 넘는 수공 실크린 레이어에, 작가의 투터운 붓 터치가 덧입혀졌다.) 다양한 역사적 요소를 통합해 관람객을 작품의 물리적 공간으로 끌어들여 회화의 전통적인 개념을 재정의했다는 평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비밀의 문이 열리는 역할을 해주는 분의 의상과 태도가 하나의 퍼포먼스인양 관람객들을 작업에 더욱 빠져들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하다. 또한 오웬스의 핸드메이드 책은 그야말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셉션 책상까지도.
10. Hoda Kashiha: The Doubt Between Us Sways Like Hung Mirrored Eyes
@episode, April 12–June 27, 2025
에피소드(https://episodegallery.com/)의 네 번째 전시다. 호다는 작년 봄, 뉴욕의 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된 작가다. 이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이기에 이번 전시 기간 동안 직접 오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봄이 오기 전 호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함께 전시를 준비할 수 있어 더욱 반가웠다. 호다는 이란과 파리에 각각 소속 갤러리를 두고 있는 작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지만, 늘 그렇듯 모든 노력은 막대한 자본 앞에서 작아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호다의 작업은 천진난만하면서도 두려움이 없고, 자유롭다. 그 자유에서 나 또한 힘을 얻는다.